[뉴스토마토 최병호·장윤서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법제사법위원장 양보 논란'을 계기로 법사위 개혁론이 촉발된 것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법사위가 가진 '사실상의 상원' 역할을 고쳐야만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사위가 각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법안의 처리를 틀어막는 '꼬장(상대방의 일을 방해하려고 하는 공연한 심술)'을 없애지 않고서는 국회 본연의 입법부 기능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9일 임채원 미래문명원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직을 야당 몫으로 넘기기로 한 것에 관해 "국회는 국회법과 합의에 따른 관행이 중요하므로 제1당이 국회의장을 맡고, 제2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기로 한 건 존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국회의장 대신 법사위원장을 주는 건 그만큼 법사위가 '상임위 위의 상임위'라는 말인데, 이건 단원제와 법사위 운영의 취지에 어긋나는 아주 나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국회의원들 중엔 법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상임위에서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 전 법 전문가들이 먼저 봐주자는 취지에서 법사위가 타 상임위 법안을 심사한 것"이라며 "역대 법사위원장은 진영논리와 개인 이해관계로 꼬장을 부려서 국회를 파행시킨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사위는 법원, 법무부,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 견제만 담당하고 타 상임위 법안 심사는 국회 입법조사처나 국회 사무처의 법제실로 옮겨야 한다"며 "법사위원장직을 야당에 넘기더라도 꼭 기능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전재경 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법안끼리의 관련성을 검증하는 걸 체계심사, 법안 내 문구 등을 고치는 자구심사라고 하는데,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를 벗어나 월권하는 것에 대해선 견제가 필요하다"며 "상임위가 여야 합의를 보고 넘긴 법안을 법사위에서 막는 건 '안정적인 정치' 구현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19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법사위가 타 상임위 법안을 심사하되 권한은 축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단원제 국가에선 입법이 빠른 대신 졸속·부실 입법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사위가 타 상임위 법안의 체계·자구를 심사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법사위 심사 기일을 대폭 줄이고, 심의를 안 하고 3개월 이상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회부하는 조항을 두면 법사위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의원은 일각에서 제기된 제3의 기구에서 법안을 심사하자는 것에 대해선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국회의원이 아닌 자 또는 입법 공무원이 법안을 심사하는 건 입법기관이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에 반해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제3의 기구에서 법안 자문을 받을 순 있지만 법안 심사 자체를 넘기는 건 다른 이야기이고, 제3의 기구가 '제2의 법사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서 넘기기 전 법사위 개혁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개혁법안은 법사위 심사를 축소하는 게 골자다. 송영길 대표는 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사위에 60일 이상 법안을 계류할 수 없고, 심사는 체계·자구에 한정하며 현안 질문을 하지 않도록 했다"며 "60일 내 협의가 안 되면 해당 상임위로 넘겨 바로 본회의로 가거나 5분의3이 찬성하면 본회의에 회부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개혁법안을 순순히 받을지는 미지수다. 20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인 여상규 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정부 견제를 위해선 법사위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여 전 의원은 "법사위원장의 힘이 막강하다고 하지만 그 어떤 위원장도 단독으로 법안을 틀어막을 순 없다"며 "법안 심사는 여야 간사와의 합의, 법안을 낸 상임위 등과 협의를 해서 진행하는 것이 때문에 협치정신만 잘 살린다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22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장윤서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