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보믿믿'

입력 : 2021-10-22 오전 6:00:00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보보믿믿'이라는 말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나 외눈박이를 꼬집는 신조어로 이해한다. 여론조사 기관 책임자인 필자에게 올 현 시점까지 기자들 전화가 가장 많았던 건 지난 3월 초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사퇴 직후와, 지난 10일 민주당 마지막 순회경선 직후다. 이 두 시기의 공통점은 기존 대선 흐름에 상당한 변곡점이 형성된 때라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최종일인 지난 10일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결과의 여진이 오래 간다. 직전까지 득표율 55%였던 이재명 예비후보가 28%, 득표율 35%선이던 이낙연 예비후보는 62%를 얻었다. 62 : 28. 그 결과를 두고 아직도 분분하다. 우선 역선택론. 국민의힘 쪽에서 상대하기 편한 후보를 고르기 위해 민주당 선거인단에 자기 쪽 사람을 대거 동원, 이낙연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라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3차선거인단 투표참여자는 약 25만명. 이낙연 15만여표, 이재명은 7만여표를 얻었다. 그 직전 경선까지 이낙연 후보 지지율인 35%를 대입한다면 8만4000표 쯤 얻는 게 맞는 데 무려 15만표나 나올 리가 없다는 게 역선택론의 요지다. 과연?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 등록에 특정 자격이나 조건은 없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민주당이 경선을 어떻게 하는지 한 번 알아도 볼 겸 나도 국민선거인단에 등록했다"고 밝혔다가 동티난 것, 기억에 생생하다. 가정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경선 교란 목적으로 전국 250여개 지구당 별로 사람을 동원해 잠입시켰다고 치자(각 당 선거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여건 야건 충성심 최고 수준인 초열성 당원이 지구당 별로 얼마쯤 되느냐고. "역선택 지시 같은 특급비밀을 지켜줄 당원은 많아야 몇 십명 수준"이라는 답을 들었다). 넉넉 잡아 100명씩 동원했다고 가정해도 2만5000명이다. 그 정도로는 도저히 '62%'를 만들 수 없다. 또, 이재명 대신 이낙연이 후보가 되면 국민의힘이 이긴다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그리고, 7만명 이상이 동원됐다면 누구 하나 어디서쯤 말이 나올텐데, 아직 그런 정황은 없다.
 
두 번째 주장은 대장동이다. 대장동 건으로 이재명 후보가 불안해진 나머지 국민선거인단의 62%가 이낙연 후보를 찍었다는 주장이다. 당일 밤부터 지금까지 상당수 언론이 그렇게 해석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데이터가 뒷받침된 주장은 아니다. 민주당 마지막 경선 직전까지 발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후보가 60%에 가까운 표를 얻을 것이라고 예측된 결과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즈음 "대장동 건에 이재명 후보가 뭔가 책임 같은 게 있는 거 아닌가"라는 여론이 절반을 넘었던 것은 맞다. 그렇지만 곽상도씨 아들 퇴직금 50억원이 드러나면서 "누구 잘못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재명을 내세웠다가 대장동 때문에 사달이 나서 어찌될지 모르니 이낙연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불과 하루이틀 사이에 좍 퍼져서 62%라는 압도적 표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항간의 추정으로는 몰라도, 신문 1면 제목으로 내세울 근거는 어디에서도 확인되는 게 없다. 이재명이 불안해져서 62%가 이낙연에게 몰표를 준 거라면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치러진 여러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지율이 급전직하해야 맞다. 컨벤션효과도 없지만, 급전직하 폭락도 역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62 : 28은 '이재명 불안감'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입론의 근거는 약하다.
 
모든 사안에 대해 제깍제깍 정답을 내놔야 한다는 모종의 강박이 너무 크게 작동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한 보도다. 필자는 왜 갑자기 62%로 치솟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정확한 과학적 분석은 힘들 것으로 본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오차범위 이내에 대해서는 우열을 아예 말하지 않는 것! 이건 조심스러운 태도가 아니라 당연한 태도다. 모른다, 분석이 안 된다,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언론이 생명으로 여겨야 할 '팩트'다. "모른다"고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면, 언론이 아니라 찌라시다. 보보믿믿의 허구를 해부하는 언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두는 언론이 진짜 언론이고 고급 언론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pen3379@gmail.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박주용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