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물가가 올라있다.", "차 기름을 가득 채우질 못한다.",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최근 만난 지인들이 인사 직후 꺼낸 이야기 중 일부다. 이들 중에는 꽤나 경제 사정이 여유로운 지인도 포함돼있다. 그만큼 웬만한 가정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즘 물가를 보면 고삐가 풀려도 단단히 풀렸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 및 업계의 각종 통계만 봐도 그렇다.
국내 소비자물가가 올해 4월부터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지속하는 것도 모자라 이달 3%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가 하면, 기름값은 그야말로 매일 고공행진 중이다. 이달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이미 리터당 1700원대를 찍었고, 서울은 1800원 선을 넘어섰다.
이 같은 통계는 실물 경제와 어느 정도 괴리돼있거나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제 관련 통계는 기본적으로 정제된 표본을 근거로 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많은 검증 과정까지 거치기에 보수적으로 책정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근 물가는 지표만으로도 심각하다는 것을 충분히 가늠할 정도로 흐름이 좋질 못하다.
문제는 이 같은 사태가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주요 산유국의 원유 생산 차질로 국제 유가 급등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미국의 공급망 병목 현상, 중국의 전력난 등 글로벌 경기 침체가 우리 경제로 고스란히 전이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부는 이에 대한 뾰족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입장을 보면 해법 마련은커녕 제대로 현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유류세 검토 입장 번복이 대표적이다. 최근 유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기획재정부는 보도설명자료까지 배포하며 그런 일은 없다며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불과 사흘 만에 말을 바꾸며 유류세를 낮추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국정감사에서 "스태그플레이션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한 점이나, 주요 20개국(G20) 회의 내용을 예로 들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지 내년까지 항구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다른 국가들) 의견이 대부분"이라고 발언한 점도 우려스럽다.
재정 당국 수장으로서 국민들에게 물가에 대한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망이 원론적 수준에 그치는 데다 명확한 근거마저 빠져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실물 경기가 충분히 침체돼있고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는 상황에 연신 "괜찮다"는 정부의 입장은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못된다.
우리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고 각종 대외환경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비난에 떠밀려 즉흥적인 물가 잡기 방편을 마련하거나 단순히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빗대 물가 상황을 분석할 것이 아니라, 정교한 지표 분석과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물가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골몰해야 할 때다.
김충범 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