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박주용 기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이재명 후보 탄압' 발언이 당은 물론 지지층으로까지 논란이 확산되면서 당대표 리스크로 부상했다. 송 대표는 그간 '이심송심'으로 불릴 정도로 이재명 후보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가 당선되는 것도 정권교체" 등의 돌출 발언으로 이 후보와 민주당을 난처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당대표의 돌출 행보로 당과 후보가 곤란에 빠지기는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대표는 두 차례나 내홍의 중심에 서며 윤석열 후보 지지율 하락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비전과국민통합위원회(국가비전위) 회의에서 송 대표를 정면 비판했다. 모두발언을 통해 문재인정부의 경제성과를 소개하던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은 차별화 같은 선거전략 때문에 문재인정부의 성취까지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면서 " 문재인정부의 성취와 과제를 공정하게 인정해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분히 송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에서 최장기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친문의 지지 속에 대선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송 대표는 전날 MBC '뉴스외전' 출연해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정부에서 탄압을 받던 사람"이라고 말해 당내 논란을 일으켰다. 당장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초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의원은 "아연실색"이라며 "내부를 분열시키는 이런 발언이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 전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문재인정부의 성취를 저평가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와 선대위가 문재인정부와의 무조건적 차별화 행보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7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사법개혁특위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송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이 후보 측과 선대위 관계자들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송 대표의 발언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오버해도 너무 오버했다"고 탄식했다. 다른 관계자는 "송 대표가 이 후보를 띄우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여당 대표로서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발언"이라며 "이 후보도 '최근 지지율 상승에 일희일비 말고 방심하거나 경거망동 해서는 안 된다'고 집안 단속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솔직히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이라고 했다.
졸지에 이 후보를 탄압한 주체가 돼 버린 청와대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선거 중립 차원에서 말을 아낄 뿐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재임 때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걸 두고 한 말인 것 같다"며 "청와대에서 따로 반응할 건 없다"고 말했다. 속앓이로 끝날 일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읽혔다.
따지고 보면 송 대표의 설화는 어제오늘이 아니다. 송 대표는 지난해 10월18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는 것도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이 후보 측은 "'정권교체'라는 말의 뉘앙스가 우려된다"면서 "여당 대표가 여당 후보의 당선을 '정권교체'라고 해서 진짜 놀랐다"고 했다.
송 대표는 지난달 22일에는 "김건희씨가 사석에서도 윤 후보한테 반말을 한다"며 "윤 후보가 집권하면 김씨가 실권을 쥐고 거의 최순실 이상으로 흔들 것"이라고 말해 여성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23일엔 이 후보가 전과 4범이 된 배경에 관해 "다 공익적 활동을 위해 뛰었던 것"이라고 말해 이 후보조차도 난감하게 만들었다. 두 발언 모두 공당의 대표로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 서초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산업분야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대표의 돌출 행보로 인한 골치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발 내홍으로 윤 후보가 대선 일정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등 '이준석 대책위'로 전락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사태를 공론화했고,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겠다" 등의 발언으로 윤 후보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내기도 했다. 결국 윤 후보는 연말·신년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게 크게 뒤진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최병호·박주용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