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마을 앞에 펼쳐진 진흙 밭 밖에는 없었다. 시화호가 들어오면서 물길이 바뀌어 마을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바지락, 굴 생산량은 예전 같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마을은 그렇게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은 마을 주민들과 젊은 어촌계장은 마을이 죽어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백미항 아래로 떨어지는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바꿨다.
주 소득원이던 채집어업과 건강망어업을 체험형 관광상품으로 바꾸고, 마을사람들은 새벽부터 마을청소를 거르지 않았다. 또 잠시 들르는 방문객에게 조차 따뜻한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들도 함께 힘을 보탰다. 마을이 새로운 산업을 통하여 자생력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정책지원과 마을홍보에 앞장서고, 전문가 컨설팅을 통해 마을주민 역량강화에도 힘썼다. 그리고 작은 기적이 시작되었다.
주말마다 마을은 관광객들로 넘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바지락 캐기, 망둥어 낚시, 게잡이 체험은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옛 추억을 선사하고 아이들에게는 갯벌과 바다를 최고의 친구로 만들어줬다. 마을 이름을 걸고 만든 전복장과 새우장은 불티나게 팔렸고, 낚시체험은 휴가철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주민들의 소득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가 아니다. 국내 어촌관광 1위를 기록하는 백미리 어촌체험휴양마을의 20여년의 여정이다. 성과에 안주할 만 한데 마을을 되살리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어촌체험에서 시작한 변화는 백미리 마을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백미리 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전복장, 새우장 등의 판매에 힘입어 백미리에는 2016년 수산식품 가공공장이 들어서고, 현지의 수산물을 가공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부가가치 식품을 만들어 해외로까지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코로나 감염병 속에서 '집콕 어촌체험'을 위해 해양수산부와 함께 진행한 '어촌체험휴양마을 특산품 할인판매' 행사에서도 백미리 마을의 수산식품들은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백미리 마을은 먹거리와 일거리를 만드는 일에만 주력하지 않고, 사람을 끌어모으고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해수부와 함께 '어촌에서 1년 간 살아보기' 시범사업을 통해 귀어귀촌하는 사람들에게 마을빈집을 개보수해 제공하고, 마을 공동체에서는 귀어인이 마을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어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귀어인이 스스럼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작년 해수부가 추진한 '어촌마을 스마트 지원사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스마트 어촌지원사업은 청년 IT 전문가를 어촌마을에 파견해 온라인홍보와 주민 IT 역량강화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백미리 마을을 담당했던 청년은 마을 주민들이 SNS 활동과 홍보 영상제작 등을 배우고 도시민들과 소통하며 마을 홍보에 열을 올리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백미리 마을 활성화의 대장정은 마을의 낙후된 시설을 개보수해 백미리 마을을 휴식부터 체험, 미식, 레저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신개념 어촌체험마을로 탈바꿈시키는 어촌뉴딜 300사업에 이르렀다. 지난 1월 17일 뉴딜사업 준공식 이후, 백미리 마을에는 슬로푸드 체험관, 해양캠핑장, 염전과 머드체험을 할 수 있는 힐링마당, B&B 숙소가 들어섰다.
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신선한 농수산물은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체험관에서 맛있는 파스타와 샐러드로 조리되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자격증까지 획득한 마을 부녀회 일동은 향기로운 원두커피를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명실공히 바다가 만들어준 천혜의 종합 레저공간을 마을 주민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활용하면서 작은 어촌마을을 활력이 넘치고 사람이 붐비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어촌의 변화는 화성 백미리를 시작으로 강원 양양 수산마을, 충남 서산 중리마을, 전남 함평 돌머리 마을, 경남 거제 다대마을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해수부는 어촌 소멸 위기를 우리 어촌과 연안이 보다 포용적이고 혁신적인 공동체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 앞으로도 어촌·연안을 활기차고 신명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데 노력하겠다.
엄기두 해양수산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