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고은하·유근윤 인턴 기자] "몸만 나왔지 몸만. 물뿌리다가 몸만 나왔어. 불이 설마 여기까지 오겠나싶어서.. 불이 와도 물뿌리다가"
동해안 산불 화마로 집을 잃어 덕구온천호텔로 거처를 옮긴 장헌욱씨(70)는 15일 이재민용 명찰을 자신의 옷에 건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봤다. 지난 4일 시작된 산불은 장씨의 산과 집터를 폐허로 만들었다.
장씨에게 그날의 갑작스런 화염은 '날벼락'이었다. 여느날 처럼 집에 가만히 있다가 산불이 갑자기 시작돼 오전 11시에 집을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집은 산의 맨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고, 집 앞 20~30m 근방에선 시뻘건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15일 찾아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 1길 화재현장. 화마가 휩쓸고 간 뒤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다.사진= 유근윤 인턴 기자)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이 만나면서 화염은 쉽게 타올랐다. 장씨는 "화염이 넘어오면 한 집에만 붙는게 아니라, 다른 집에도 다 붙어요. 이러면 싹 다 넘어가잖아요"하며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이날 인터뷰 중인 장씨 뒤로 지나가던 이웃 주민 김무하씨(70)는 자신이 소유한 이층집과 염소 25마리 등이 모두 불 타 소실됐다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집에 염소를 10마리 뉘이고, 닭을 25마리 뉘이면서 알을 낳으면 집에서 반찬해가지고 먹고 했지, 이젠 불에 다 타버리고 한마리도 남김없이 싹다 타버렸으니까"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불을 낸게 아니고 우린 가만히 있다가 당했다니까요..이런 허망한 경우가 어디있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가만히 있다 당했는데, 국가재난지역으로 선정돼도 지원금이 1600만원인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15일 찾아간 경북 울진 화재현장인 호월 1길 김무하씨의 비닐하우스. 김씨는 이번 화재로 소유하고 있던 비닐하우스 5동을 모두 잃었다. (사진=고은하 인턴기자)
김씨가 알려준 집 주소를 방문하니, 실제 현장은 더욱 참혹했다. 2층집은 모두 전소돼 집을 이루던 구조물들은 밖으로 도출돼 있었다. 불은 전소됐지만, 쾌쾌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는 가득했다.
이번 산불로 울진국민체육관에 피신해 있던 이재민들은 집 근처 숙박시설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덕구온천호텔에는 가장 많은 이재민들이 모여있다.
이재민들을 위한 자원봉사와 사랑의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십시일반 이재민을 돕고 있다.
허대호 울진군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불이 꺼졌다고 해서 관심도 꺼지지 말고 꾸준히 애정을 가져달라"며 호소했다.
고은하·유근윤 인턴 기자 eunh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