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리베이트에 도시락으로 제약강국 되겠나

입력 : 2022-04-26 오전 6:00:00
몇 해 전 일이다. 평소 좋지 않았던 발목이 시큰거려 전부터 자주 갔던 정형외과를 찾았다. 그곳에선 다른 병원들과 다르게 처방전 두 장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 약국에서 약을 짓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모든 알약에 같은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제조회사를 구분할 수 있는 표시들이었다.
 
병원에서 환자보관용으로 챙겨준 처방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약들은 처방전에 적힌 그대로였다. 이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어떤 성분의 약들이 처방됐는지 확인했다. 소염제나 소화제처럼 흔히 처방되며 다른 회사들도 생산하는 약들이었다.
 
당시에는 같은 회사에서 제조된 약들을 먹는다는 사실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약사와 환담을 나누던 중 의심이 싹텄다. 리베이트 가능성이다. 이 약사는 한 병원에서 유독 같은 회사의 약만 처방한 점, 처방된 약들이 구하기 어렵거나 일부 회사에서만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합리적 의심을 제기했다.
 
리베이트는 자사 약을 처방하는 대신 금액을 돌려주는 구조다. 오래 전에나 성행했고 요즘에야 흔하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뿌리가 완전히 뽑히진 않았다. 물밑에서 리베이트가 일어나고 있으니 제약사들을 겨냥한 세무조사가 아직도 있는 것이다.
 
높은 가능성으로 리베이트를 의심케 한 이 일화 외에도 씁쓸함을 느낀 적이 있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거리를 걷던 중 병원 건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간 정장 차림의 사내를 봤을 때다.
 
사내의 손에는 네모 반듯하게 포장된 도시락들이 들려 있었다. 한여름 날씨에도 넥타이까지 차려입은 옷매무새와 병원만 입주한 건물 특성, 오후 1시께 시작되는 병의원 점심시간으로 짐작컨대 제약사 영업사원의 도시락 배달이었다.
 
제약사 영업을 전담하는 이들은 내원 환자로 붐비지 않는 점심시간을 주로 이용한다. 이들의 병의원 방문 목적은 자사 제품에 대한 정보 제공이다. 방문 시간이 제한적인 만큼 도시락 식사와 업무를 병행하기도 한다.
 
회삿돈으로 병의원에서 먹을 도시락을 구매하는 일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자율준수프로그램(CP)에서 정한 금액을 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익명의 직장인들이 모여 경험담을 공유하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화제가 됐듯이 금액을 넘기는 일도 더러 발생한다.
 
희귀하지 않은 약임에도 한 회사에서 제조한 약들만 적힌 처방전, 의약품 정보 제공을 위해 한여름에도 도시락을 들고 헐레벌떡 뛰는 이들은 우리나라 제약산업 밑바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제약산업계는 수년 전부터 제약강국 실현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요구했다. 특히 지난달 있었던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정부 직속 컨트롤타워 설치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제약강국 실현은 정부 의지와 산업계 내부 자정을 양축으로 삼아야 가능하다. 제약산업 도약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관행으로 둘러싸인 생태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리베이트를 의심할 수 있는 처방전이 작성돼서도, 의약품 정보 제공이라는 본업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도시락 배달도 있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제약강국을 외치는 당사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산업2부 동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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