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구해하지 않는 후보

입력 : 2022-05-13 오전 6:00:00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송구해하지 않는 공직후보자를 단 한 명이라도 보고 싶다". 새 정부 인사청문 국면을 거치면서 시민들이 입을 모으는 말이다. 성직자 수준의 도덕 수준을 기대하냐고. 천만의 말씀. 그런 식으로 시민 요구를 비아냥대는 건 합당하지 않다. 시민들은 성직자를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양식있는 시민, 룰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온 대다수 시민 수준의 후보자를 보고싶다는 당연하고도 오랜 요구가, 왜 어느 성향의 정부에서건 불가능한지에 대한 분노와 박탈감이, 이 글의 첫 문장에 응축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김&장> 고문료 20억에 대해 "지나치게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국민 눈높이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송구하다"고 답했다. 굳이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빌지 않더라도, 말은 평소 사고체계의 반영이다. "지나치게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이라는 구절에서 좌절감을 느낀 시민들이 잘못인가. 학교간판 좋고 능력 좋고 경력 좋은 '그사세'(그런 사람들 세계. 주로 2030 사이트에서 쓰이는 약어)에서 그 정도는 당연한 건데, 그사세 관행이나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잘못이란 얘긴가.
 
한 총리 후보자를 비롯, 다수 후보자의 경력 대부분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의 업무 수행과정에서 쌓인 것들이다. "내 능력이 출중해 국가나 공적 섹터가 자신들에게 지급한 최소한의 대가"라고 말하고플 것이다. 과연 꼭 그러할까. 그 사람들이 그 자리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력서 상 경력의 상당 부분은 쌓일 수 없었다. 본인 능력도 일부 있었겠으나, 그러한 '커리어 패스'를 밟을 수 있었기에 그들의 능력은 더 크게 보여졌고, 사회경제적 몸값이 치솟은 건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그들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에 납세 시민들의 땀이 배있음을 모르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찬란한 경력과 타고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왜 청문회 때마다 송구하다며 계면쩍어하는가. 송구해하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다. 상당 수는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투다. 살아온 과정에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기에 구차하게 변명하고 송구해하는 것 아닌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뜻이다. 내적 승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 시민들이 신뢰를 보내기란 힘든 일이다.
 
새 정부에 바란다. 무엇보다도, 공교육 회생과 양극화 해소의 주춧돌을 확실히 놓기를 기대한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분노나 좌절이 '구조적으로' 해결되어야 우리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다. 모든 정부는 성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정 정부의 실패는 특정 진영이나 정치블록만의 실패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실패와 퇴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소통과 국민통합을 내걸었고, 윤석열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난 정부 대부분은 소통-통합에 실패했다.
 
소통과 통합,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해법이나 정답을 몰라서 못하거나 실패한 건 아니라는 게 필자 판단이다. 양극화해소가 통합과 소통의 요체다. 시간당 임금의 극심한 격차는 공동체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첫 번째 요소를 파괴한다. 똑같이 일하는데 소득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면 누가 그걸 공정하다 하겠는가. "시간당 임금격차가 8배 안으로 유지되는 게 사회경제적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에 필요하다"는 요지의 OECD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그 보고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자는 거 아니다. 그 8배라는 수치가 산출된 과정을 들여다보고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가 적정 범위인지 공론화를 시작하자는 얘기다. 정부나 국책연구소가 앞장 설 일 중 하나다.
 
또 하나. 공교육 정상화다. 빈사 상태인 공교육을 방치하고서는 기회균등-공정경쟁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선정한 국정과제 중, 양극화와 공교육회생에 대한 구체 방책이 소략해보여 아쉽다. 피폐해진 공교육시스템과 극심한 양극화를 놔두고 통합과 번영을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정운영 긍정 전망이 50% 선이다. 새 정부의 출발은 그닥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불안해하거나 과민해질 필요는 없다. 지극히 상식적 얘기지만, 기대치가 낮으면 실망 요소도 적고, 호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만 잘 해도 훨씬 크게 체감된다는 얘기다. 윤석열정부도, 아니 윤석열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 첫 단추는 국민과의 겸손한 소통이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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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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