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약 자판기를 사실상 상용화하는 결정을 내리자 대한약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사진=대한약사회)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약 자판기(화상투약기)에 대한 조건부 실증특례 적용이 결정된 가운데 대한약사회가 강하게 반발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21일 정부당국과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날 제22차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의약품 스마트화상판매기, 이른바 약 자판기에 실증특례를 부여하는 등 11개 규제특례 과제를 승인했다. 사실상 약 자판기 상용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약 자판기는 약국이 문을 닫은 저녁이나 심야 혹은 휴일 의약품이 필요한 소비자를 위한 기계다. 약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품목은 병원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다. 소비자는 약사와의 화상 상담을 통해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동안 약 자판기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규제완화 대상으로 거론됐으나 이해당사자 간 의견이 갈리면서 도입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가 약 자판기 도입으로 가닥을 잡자 대한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거세게 반발했다.
대한약사회는 "지금까지 대면원칙 훼손, 기술과 서비스의 혁신성 부족, 소비자의 선택권 역규제, 의약품 오투약으로 인한 부작용 증가, 개인 민감정보 유출, 신청기업 중심의 영리화 사업모델과 지역약국 시스템 붕괴 유발 등 약 자판기로 인해 발생할 것이 분명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한편, 심야약국 운영 확대라는 의약품 접근성 개선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며 약 자판기 실증특례 허용을 결사 반대해 왔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약 자판기 조건부 실증특례 부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약국은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전초기지로서 매우 종요한 임무를 수행해 왔다"면서 "특히 공적 마스크 및 자가진단키트(자가검사키트)의 안정적 공급 등 방역용품 대란 상황에서 국민건강 수호라는 일념으로 묵묵히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대한약사회는 또 "약 자판기 조건부 실증특례 부여는 이러한 약사사회의 노력을 폄하하고 약국이 지역사회 안전망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약사(藥事) 정책의 카운터파트너로서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온 대한약사회와 전국 8만 약사회원이 느끼는 분노와 배신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약사회는 약 자판기 도입 결정에도 끝까지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대한약사회는 "약 자판기 실증특례 사업이 가지고 있는 약 자판기 판매약 품목과 가격, 유통담합, 의약품 유통질서 훼손행위 등 위법성을 끝까지 추적·고발하고 기업의 영리화 시도를 반드시 저지해 약 자판기가 약사법에 오르는 것을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전국 16개 시도지부가 단결해 약사법에 위배되는 구체적인 실증특례 조건 부여를 차단하고 단 하나의 약국에도 약 자판기가 시범 설치되지 않도록 하는 등 어떠한 조건부 실증특례 사업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또한 비대면 진료 대응 약·정협의 전면 중단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약사 말살 정책에 대한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국민건강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보건복지부의 정체성을 명확히 밝힐 것을 촉구한다"면서 "향후 발생할 국민건강 위해와 국가적 손해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꼬집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