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국민의힘은 21일 해수부 공무원 서해 피격사건 진상조사TF 1차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2년 전 북에 의해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사건의 실체를 문재인정부의 월북 공작으로 규정, 청와대 회의록 등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핵심 증거들을 공개하자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한미연합정보 자산인 SI를 비롯해 대통령기록물의 공개가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이를 재론하며 공론화는 것은 결국 문재인정부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진상조사TF 첫 회의에서 "대한민국 공무원이 공무수행 중에 북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살해당한 채로 바다에서 불태워졌다. 그리고 문재인정부에 의해 월북자로 규정됐다"며 "이 죽음이 누구에 의해 어떤 경위를 거쳐 월북으로 둔갑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진상조사TF 단장을 맡은 하태경 의원은 "문재인정부가 (피해자를)살릴 수 있었는데도 북한의 살인을 방조했다"며 "'월북몰이'를 포함한 2차 살인, 명예 살인"이라 규정했다. TF는 명확한 진상조사를 위해 비공개 정보인 청와대 회의록과 SI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민주당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 의원의 주장과 달리 당장의 진상규명은 어려울 전망이다. SI는 한미연합정보 자산으로 국가기밀인 데다 미국 측 협조 없이는 공개 자체가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조차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SI 공개 여부에 대해 "국민들께 그냥 공개하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개하라고 하는 주장 자체는 좀 받아들여지기 어렵지 않나"라고 부정적 입장을 제시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도 전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SI는)공개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정치적인 논쟁을 만드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그는 "진위 여부를 보려면 감청 내용을 봐야 하는데 감청 내용을 보고 음어를 분석해서 암호를 해독하는 게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감청 정보는)미국과 사전에 협조하기 때문에 사실상 법원을 통해서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기록물은 고등법원장 판결을 따라갈 수 있지만 SI 정보는 다르다"고 했다.
이를 의식한 듯 권성동 원내대표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SI공개가 가능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SI 공개 이전 모든 사안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것에 있다고 본다. SI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내용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봐서 열람을 위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민주당의 협조를 촉구한다"고 초점을 대통령기록물에 맞췄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민생우선실천단 제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 재임 시 남긴 각종 기록물로, 등급에 따라 열람이 제한된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의 경우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문재인정부 임기 만료 후 15년간 봉인된다. 이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을 국회 의결로 열람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앞서 20일 기자들과 만나 "정보 공개를 꺼린 것은 불리한 진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북한한테 얻은 정보, 첩보, (정보 습득)루트와 과정을 공개해야 되는 게 맞나 해서 협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SI를)여당이 공개하자고 하면 공개하자. 제가 지금 이걸 가지고 꺼릴 게 뭐 있느냐"고 SI 공개로 한정해 맞불 작전을 폈다.
사건 당시 국회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도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국민의힘은 여당이라 국방부 SI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야당한테 주장할 게 아니다. SI에는 모든 정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여당이 오로지 져야 한다"고 공개에 따른 책임을 여당으로 돌렸다.
아울러 김 의원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해경의 '입장 번복'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는 "새로운 자료나 근거가 나왔다면 충분히 다시 검토해 볼 수 있는데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달리 판단했다"며 "(해경의 입장 번복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적 판단에 정치가 개입돼 수사를 끌고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일 해경에 따르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해경 지휘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판에 글을 남긴 한 직원은 "(해경은)2년 전까지 월북이 맞다고 확신하면서 브리핑을 했다"면서 "정권이 바뀌고 나서 제대로 확인을 해보니 월북 증거가 없다. 정권 입맛대로 브리핑을 한 사람은 한 계급 승진을 했다"고 꼬집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결국 문재인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라며 "이제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주체는 전 정부가 아니라 윤석열정부다. 제 발등을 찍은 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기록물까지 갈 이유도 없다. 1차적으로 국회 국방위 회의록 공개, 윤석열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한미동맹을 들어 미군의 협조를 구해 SI를 공개하면 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