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한 후 증상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만 검사를 받아도 무방하다는 내용의 국내 의료진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게재됐다. (사진=픽사베이)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하고 1년이 지나면 심장 기능 확인을 위해 심장 스트레스 기능검사를 한다. 이 정기검사가 고위험 환자들의 예후에 얼마나 유효한지 국내 의료진이 대규모 임상연구로 세계 첫 검증하면서 전 세계 심장 교과서를 새로 쓰게 됐다.
지난 20년간 통상적으로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받은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스텐트 재협착이나 심장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허혈성 심장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추적검사로서 운동부하검사, 심장핵의학검사, 약물부하 심장초음파검사 등의 스트레스 기능검사가 정기적으로 시행됐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박덕우·박승정·강도윤 심장내과 교수팀이 관상동맥 중재시술 후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 여부에 따른 고위험군 환자들의 주요 심장사건 발생률이나 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두 환자군 간 차이가 크게 없어 정기검사가 시술 후 환자 예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전 세계 의사들의 임상치료 교과서로 불리는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NEJM)' 최신호에 게재돼 관상동맥 중재시술을 받은 고위험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가이드라인에 반영될 전망이다.
NEJM은 전 세계 의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이 논문을 인용하는지를 나타내 학술지의 위상을 반영하는 피인용지수(I.F)가 176.079로, 실제 임상 의사들의 치료 지침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최고 권위의 임상논문 저널이다. 실제로 지난 수십년 동안 교과서에 반영된 대표적인 임상연구들은 NEJM에 실렸다.
관상동맥 중재시술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혔을 경우 좁아진 혈관에 관상동맥 스텐트를 삽입해서 혈관을 넓히는 치료법으로 협심증 혹은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 질환 환자에게 가장 많이 시행되고 있는 표준 치료 방법이다.
통상적으로 관상동맥 중재시술 1년 후 시행하는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는 임상 의사들의 경험에 의한 권고사항이었으며 시술 후 고위험 환자들의 스트레스 기능검사가 사망률이나 심장질환 발생률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최근까지 밝혀지 않았다.
박덕우 교수팀은 공익적 목적의 전향적 다기관 임상연구를 위해 국내 11개 병원에서 관상동맥 중재시술을 받은 고위험 시술환자 1706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배정해 시술 1년 후 스트레스 기능검사를 시행한 환자군 849명과 정기검진 없이 표준치료만 진행한 환자군 857명을 비교분석했다.
환자들은 평균 나이 64.7세로 좌주간부 질환, 분지병변, 만성폐색병변, 다혈관질환, 당뇨병, 신부전 등의 해부학적 혹은 임상적 고위험인자를 최소 1개 이상 동반한 환자였다. 연구진은 시술 후 2년 후의 사망, 심근경색, 불안정형 협심증으로 인한 재입원 등 주요 임상사건 발생률을 평가했다.
그 결과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를 시행한 환자군에서 시술 후 2년째 주요 임상사건 발생률은 5.5%였으며, 정기검진을 시행하지 않은 환자군에서 6.0%로 두 집단 간 통계학적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관상동맥 중재시술을 받은 고위험 환자에서 시술 1년 후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를 의무적으로 하기보다는 시술 후 가슴통증. 호흡곤란 등 재발이 의심되는 증상이 동반된 경우에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의료체계의 적절한 운영에 도움이 되며, 환자 안전에는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박덕우 교수는 "이번 논문은 경험에 의존해왔던 관상동맥 중재시술 시술 후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의 유효성을 평가한 최초의 대규모 무작위 임상연구"라며 "임상적 근거가 불확실한 검사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익적 의미가 매우 크며 실제 환자의 진료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상동맥 중재시술 후 고위험 환자들이 재발에 대한 염려로 무증상임에도 정기검진을 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모든 환자가 필수적으로 정기적 스트레스 기능검사를 받기보다 증상이나 여러 임상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검사 유무나 그에 맞는 치료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심장학회(ESC)에서 '올해의 주목받는 연구'로 발표됐다.
한편 이번 연구를 통해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의료진이 주저자 또는 교신저자로 참여한 NEJM 논문은 총 8편으로 늘어났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은 지난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NEJM에 논문을 게재한 박승정 심장내과 교수를 필두로 관상동맥 질환을 치료하는 중재시술팀이 6편, 판막질환을 치료하는 강덕현 심장내과 교수가 2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특히 NEJM에 게재한 중재시술팀의 논문 6편에 박승정 교수가 모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은 아시아에서 처음이자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과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