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두 사람의 부고

입력 : 2022-10-19 오전 6:30:00
지난주, 공교롭게도 같은 날,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빌라왕’이 호텔에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오래 전 부동산 투자자로 인터뷰했던 그도 ‘빌라왕’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빌라왕’이 ‘슈퍼개미’ 만큼이나 흔한 별명은 아니었던 터라, 뉴스에 수백 채 빌라를 무자본 갭투자로 매입한 후 방치해 세입자를 울린 사기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긴장했다. 그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혹시나 사기꾼을 성공한 투자자로 포장해 소개했을까봐 맘 졸이는 기자의 못난 이기심이었다. 
 
투자자를 인터뷰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여러 곳에서 검증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성공가도 어느 길목에 무슨 사건이 숨어 있는지 기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아무리 사기꾼이라도 인터뷰에선 좋은 말만 한다. 인터뷰 내용 자체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가 기사를 유명세를 얻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기자는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어물어 사망한 그가 기자의 인터뷰이가 아니란 사실을 확인한 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몇 시간 뒤에 전해진 비보에 뭔가가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신진오 님의 부고였다. 
 
신영증권에서 주식운용을 책임졌던 시절의 그를 알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고인은 ‘밸류타이머’로 살았던 신진오 님이다. 
 
2009년 4월30일. 고인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는 것은 ‘전략적 가치투자’라는 책을 읽고 인터뷰를 요청했고 인터뷰를 마친 뒤 들고 간 책에 사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식종목 찾기에 혈안이었던 내게 ‘관리가 9할’이란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다. 
 
인터뷰이와의 인연은 인터뷰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밸류타이머 님은 아니었다. 10년 넘게 곁에서 지켜본 그는 가치투자의 본산 신영증권 출신답게 가치투자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투자교육에 힘썼다. 
 
책과 같은 이름의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가치투자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아이투자를 기반으로 ‘밸류리더스’라는 독서 모임을 출범시켰다. 투자서적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양서를 읽고 토론을 하는 이 오프라인 모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새로운 기수를 뽑는데 여기에 가입하려는 대기자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는 국내외 투자의 대가들이 널리 알려지는 데도 힘을 보탰다. 주식의 대가들이 쓴 책과 성공한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에 대해 저술한 책을 펴낼 때마다 추천사로 힘을 실어주었다. 그의 추천사가 실린 투자서적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가치투자로 부를 이룬 투자자가 하나둘 나타났고 이들이 직접 방장이 되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는 경우도 늘었다. 밸류타이머 님은 이들과 함께 가치투자협회를 만들었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밸류타이머 님을 마지막으로 뵌 날은, 하필이면 기자가 <뉴스토마토>에 입사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워렌 버핏의 투자를 널리 알리는 책 혹은 잡지의 출간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숙고 끝에 고사했으나 다행히 그 책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출간되고 있다. ‘버핏클럽’이다. 이후로도 전화통화는 여러 번 했지만 직접 만난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후 투자자의 필독서임에도 부담스러워서 기피하는 명저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한국에 맞게 풀어쓴 ‘현명한 투자자 해제’를 낸 걸 보고 ‘역시 밸류타이머 님답다’는 생각을 했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 인터뷰했지만, 그는 본인의 성공보다 남을 성공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신 분이다. 
 
같은 날 접한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이 내게 준 충격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한 사람은 혹시라도 내가 인터뷰했을까 노심초사한 인물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분이다.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주식투자가 도박이 아니라 기업과 동행하는 것임을 깨달은 투자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졌음을 알리고 싶었다. 
 
밸류타이머 신진오 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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