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헌화한 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를 외신들도 실시간 속보와 함께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참사를 윤석열정부의 안전관리 부족에 따른 ‘인재’로 규정했다. ‘경찰 인력을 배치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사고’라는 정부의 해석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형 압사 사고의 경우 공공 안전 체계가 허술한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안전 체계에 대한 근본적 의심도 더해졌다. 과거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현 정부의 정치적 난제가 될 것이라는 뼈 아픈 지적도 나왔다.
1일 CNN,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이태원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윤석열정부의 안전관리 소홀을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한국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주요 외신들은 그 원인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공통된 지적은 경찰·소방 인력 부족한 배치에 있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핼러윈 행사에 참여했던 외국인들의 발언을 인용해 “사고가 일어난 날 밤에 본 경찰은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근처에 있던 몇 명이 다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CNN은 줄리엣 카이엠 재난관리 전문가 겸 국가 안보 분석가의 “당국은 토요일 밤 이전에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사람들을 구출해야 할 시점을 알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군중의 규모를 모니터링하며 사람들을 대피시킬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함께 전했다.
특히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이미 대규모 인파가 몰린 집회 등을 관리해본 경험이 있음에도 이번 참사가 벌어졌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 집회들은 시위자보다 출동한 경찰이 더 많은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번 참사 현장은 대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시각은 외신 평가와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주말 서울 한복판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를 '사고'로 규정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9일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국민 안전을 책임질 주무 장관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당시 137명의 인력을 현장에 배치했고, 그나마 이들 대부분은 불법촬영·마약단속·교통정리 등을 위해 투입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 처음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10만명 넘는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음에도 좁은 골목길 통제 등 인명 피해에 주의하지 않았다. 서울시와 용산구청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 또한 별도의 안전대책이 없었다. 주최 측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방치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외신들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해 생존자들의 급박했던 상황, 경찰의 통제 부족 등을 전하며 ‘예고된 인재’에 무게를 실었다. 통상 주요 외신들은 한국 언론의 인터뷰 내용 등을 번역해 보도하는데, 이번 참사는 직접 현장 취재까지 진행하며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꼬집고 나섰다.
외신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에서 공공 안전관리 부재가 불거졌다는 점을 언급하며 현재 얼마나 이 문제가 개선됐는지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세월호)침몰은 (한국의)느슨한 안전 기준과 규제 실패를 드러냈었다”며 “(이번 참사로)정부가 안전기준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대중의 철저한 검토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매체인 WP는 ‘핼러윈 참사는 세계에서 가장 비호감 지도자에게 닥친 시험’이라는 기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WP는 “희생자가 주로 젊은이인 악몽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며 “가뜩이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중도 우파 지도자가 정치적 화약고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게 됐다”고 예측했다. WP는 “윤 대통령은 핼러윈 재앙 이전에도 세계에서 가장 싫어하는 리더였고, 최근 모닝 컨설트(Morning Consult) 설문조사에서는 72%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며 “윤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