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 나섰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양국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양측 모두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는 원론적인 내용의 언급만 있었을 뿐, 구체적 합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 해법을 놓고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모두 취재 현장을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제17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 후 양자 회담을 가졌다. 한일 정상이 정식 정상회담을 한 것은 2019년 12월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진행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총리와의 회담 이후 2년11개월 만이었다. 앞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30분 동안 약식 회담을 한 바 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최근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양국 간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한일 정상이 앞으로도 소통을 이어나가기로 하면서 양국 관계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과거사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점에 대해 양측 모두 공감했지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회담 이후 "양 정상은 양국 간 현안과 관련해 외교당국 간에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음을 평가하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자고 했다"고 전했다. 강제징용 문제를 '현안'이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기시다 총리도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뉴욕에서 저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외교당국 간 협의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도모하는 것으로 재차 의견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현재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일본 측의 호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양국은 지난 9월 정상 간 약식회담 이후 10월 국장급, 차관급, 외교장관, 외교차관 협의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와 기시다 총리 간 면담까지 진행했지만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한 성과 도출에는 실패했다. 일본은 그동안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한국이 해결방안을 마련하라는 일방적 입장을 취해왔다. 윤석열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요구에도 저자세 외교를 지속했다. 앞서 우리 해군은 지난 6일 "국민정서와 배치된다"는 야당의 비판을 무릅쓰고 일본 관함식에 참석해 욱일기와 흡사한 일본의 해상자위대 깃발에 대한 경례로 논란이 일었다. 한일 관계 개선에만 집중한 나머지 외교적으로 일본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듯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14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한국 쪽에서는 (강제징용)배상에 일본 기업이 기부를 하거나 참여하도록 일본 쪽에 부탁하고 있다"며 "그러나 일본 쪽에서는 오히려 일본 기업이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보도돼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한국 쪽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배상금도 한국 쪽에서 다 대신 내준다는 것을 중심으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보도가 대단히 많다"고 전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적극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또 일본 측에는 아직도 유보 사항이 많다. 일본 여론을 설득하는 것은 기시다 총리에게 남겨진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진 센터장은 "일본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어렵지만 할 수 없이 한국과 협력해서 나가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북한 문제가)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일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타협하는데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결국은 양보하고 타협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 9월 약식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실 전속 취재로 진행돼 논란이 됐다. 이로 인해 공개 회담 전체 내용이 아니라 편집된 발언과 영상·사진만이 취재진에 제공됐다. 보통 각국 정상과의 회담은 '풀기자단 취재'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를 배제한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 뿐만 아니라 한미 정상회담도 대통령실 전속 취재였다. 앞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필리핀, 한-태국 정상회담이 풀기자단 취재로 진행된 것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 일정 중 가장 핵심이었던 두 회담이 사실상 언론에 비공개나 다름없이 진행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미, 한일 정상회담 등 중요 일정을 비공개로 진행한 것은 윤 대통령의 말실수 등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9월 미국 뉴욕 순방 과정에서 비속어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박수현 전 수석은 "정상회담을 전속 취재로 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다양한 언론의 관점으로 취재가 되어야 할 텐데 이 문제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취재 제한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