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대통령실 제공)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재벌개혁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시장 자율'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은 줄곧 "기업을 힘들게 하는 모래주머니를 없애겠다"며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책) 기조로 일관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집권 1년차 때 법인세 감면 등 재벌과 초대기업 등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펼쳤다. 윤석열정부의 경제정책이 이명박(MB)정부와 유사한 점을 들어 사회 양극화만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식 시장 자율이 '민주'를 도외시하는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제20대 대선을 앞둔 지난 2020년 9월2일, 당명을 변경(미래통합당→국민의힘)하면서 강령 역시 손봤다.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민주화 구현’, ‘사회적 양극화 해소’,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 등 따뜻한 보수의 가치를 앞세웠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효과였다. 이후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대선 주자로 영입했다. '부패 척결의 적임자'라는 윤 대통령의 이미지가 국민의힘 새 강령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이후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등 재벌개혁에 역행하는 행보를 이어갔다. 실제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산업 정책 관련 항목을 보면 '규제혁신을 통한 기업 투자 활성화', '기업 성장에 의한 민간주도 일자리 창출' 등을 명시했다. 또 근로시간 등과 같은 노사자율 결정분야를 확대하고 연공급 임금 체계를 유연화하는 등의 방안도 담았다. 재벌개혁 정책은 전무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윤석열정부는 943건의 규제혁신 과제를 발굴해 추진하겠다며 당 강령에 담긴 경제민주화 실현마저 후퇴시키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이슈의 중심에 섰던 지난 2012년 4·11총선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거대 경제세력으로부터 시장과 중소기업, 소비자를 보호하는 공정경제의 실현' 등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선 후보도 ‘대주주 사익 추구, 재벌의 시장지배력 남용 차단’ 등을 경제민주화로 규정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재벌과 초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시키는 경제민주화 역행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다.
규제혁신 과제 중 윤석열정부가 영업이익 3000억원 이상의 초대기업 100여개에 한정한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25%→22%)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이 정부의 기조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민주당은 올해 예산안 협상 당시 정부여당의 초부자감세를 비판하며 오히려 중견·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 거듭 초대기업에 한정한 법인세 인하를 고집하면서 여야의 예산안 협상 파행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윤석열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MB노믹스’의 판박이다. 당시 MB정부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바 있다.
신년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 도착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MB정부가 규제완화, 경제민주화 후퇴 등을 통해 얻은 것이 양극화 심화라는 점이다. 당시 경제 관련 지표를 살펴보면 지니계수는 2006년 0.285에서 2009년 0.294까지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높아짐을 의미한다.
그사이 기업소득은 증가했다. 기업과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 증가율 격차는 2007년 14.7%포인트에서 2009년 19.4%포인트로 점차 확대됐다. 임금 격차와 불평등 지속도 심화됐다. 저임금 계층은 2007년 23.3%에서 2011년 28.1%까지 늘어났다.
정치권에서는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삼성생명법 추진을 기대하는 모양새지만, 정부여당의 무관심에 방치되고 있다. 삼성생명법은 삼성생명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총수 일가 지배력을 강화하는 불공정한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법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20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한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