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 역할을 위한 조세 정책 원칙에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라는 규준이 명확합니다. 특히 소득 분배의 형평성을 추구하는 '소득재분배'는 사회 구성원 간 상대적인 소득 불평등 정도를 해소하고 사회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공적소득의 이전 역할을 합니다.
사회보험, 조세, 국민의 최저생활 보장 등 안전망 기능을 수행하는 공적 지원제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볼 때 소득계층 사이 재정의 역할은 사회적 인간의 공존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난방비 재정 지원을 둘러싼 재정당국 수장의 발언을 듣자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을 하는 것은 '조삼모사'." 조삼모사는 장자 제물론편에 나오는 고사성어입니다.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의 도토리를 주겠다'는 소리에 반발하자 '아침에는 도토리 네 개, 저녁에는 세 개를 주겠다'는 술수에 기뻐하는 배고픈 원숭이 이야기를 빗댄 발언으로 세금을 걷어 다시 지원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론은 같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이는 재정의 역할이자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속 빼놓고 말하는 술수로 밖에 안보입니다.
지난해 걷힌 국세수입 395조9000억원 중 128조7000억원이 소득세입니다. 우리나라 5000만명의 국민 중 2000만여명 가량이 소득세를 냅니다.
2021년 급여생활자의 근로소득에서도 상위 20%는 9900만원에 달합니다. 하위 20%는 600만원 남짓이지요. 최상위 0.1% 구간에 속하는 1만9000명 가량은 1인당 평균 9억5000만원을 벌어들였습니다.
급여생활자 상위 20% 구간에 속한 고소득자들이 하위 20%의 15배에 달하는 소득을 벌어들입니다. 그 만큼에 비례해 세금도 더 많이 내는 구조입니다.
최근 기획재정부 설명자료에서도 2022년 근로소득세수 증가분을 보면 상위 3%의 고소득자가 74%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상위 소득 10%가 하위 50%보다 14배의 부를 걷어 들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창귈로 소득 불평등이 더 심화되면서 버는 사람은 더 벌고 어려운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등 양극화 심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공평 과세의 역할이 사회 안전망을 든든히 하는 버팀목 격입니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 더 내는 당연함의 이치이지요.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상위 1%가 전체 세금의 4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1년 종합소득세 분위별 신고 현황에서도 상위 10%가 과세표준 62.1%의 점유비를 보이고 있습니다. '난방비 폭탄'에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소비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1월 고지서를 받아봐야겠지만 아이 둘 아빠인 저로서도 긴축 재정이 불가피합니다.
소득 불평등 심화와 고물가 탓에 실질임금까지 줄면서 하위 소득자들만 늘어나고 있는데 '소득재분배' 효과를 쏙 뺀 '조삼모사' 발언은 민생을 등진 채 국가재정의 '우공이산'만 하겠다는 것일까요. 아님 '감언이설'인가요. '일성불변'인가요.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말하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