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 과거사 현안에 대한 언급 없이 '북핵 위기론'을 꺼내 들어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습니다. 안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했습니다.
미래 '5회'·번영 '4회' 언급…대일 미래지향적 협력 방점
윤 대통령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개최된 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취임 후 처음으로 기념사를 했습니다. 직전 정부의 3·1절 기념사와는 달리,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문제 등 과거사 관련 현안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정부를 향해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일본의 반성이 있어야만 미래지향적 관계를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에서 일본의 과거사 사죄나 반성에 대한 촉구 없이 일본과의 미래 지향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습니다. 기념사에서 '미래'를 5차례, '번영'을 4차례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외에도 '자유'(8회), '헌신'(4회), '기억'(4회) 등이 이번 기념사의 주요 키워드로 담겼습니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선열을 기억하고 번영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기념사의 핵심 내용입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규정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식민 지배를 한 데 대한 실질적인 사과와 반성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인정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핵 위기 등 안보위기 명분으로 "일본 협력 파트너" 규정
윤 대통령은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한 이유로 세계적인 복합 위기와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 상황을 꼽았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은 미중 갈등의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 한국의 선택이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협력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윤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기념사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양국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전날 피해자 유족들을 만났고, 일본 외무성에서 협상 실무를 담당하는 후나코시 다케히로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지난 주말 비공개 방한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향후 강제동원 해법을 결론 지을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지 주목됩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이날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일본이 호응 조치를 하면 (강제동원 문제) 협상은 끝이 날 일"이라며 "한일 양국이 협상하고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안 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까지 했으니 이제 정상회담 절차만 남았다"고 전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