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진열돼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가 출간한 책을 두고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지난 18일 내놓은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 노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는 취지로 주장했죠. 야권은 이 변호사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정치권을 뒤흔든 이 변호사 회고록을 둘러싼 거센 공방의 핵심 쟁점을 살펴봤습니다.
①논두렁 시계 진실
20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회고록에 권양숙 여사가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피아제 시계 세트 2개를 받았다는 의혹은 다툼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06년 9월 그에게 뇌물로 전달됐음이 상당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변호사는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에 출석해 조사실에서 나눈 대화도 기록했는데요. 그는 당시 중수부장실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했다고 회고록에 썼습니다.
민주당은 계파를 불문하고 분노를 금치 못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논두렁 시계와 관련한 이 변호사의 주장에 격앙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에 소속된 한 의원은 이날 본지와 한 통화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없는 것”이라며 “(논두렁 시계 논란을) 이용해 대통령을 돌아가시게 하고서는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 친명(친이재명)계 초선 의원도 “본인이 그렇게 떳떳하고 당당했으면 진작 나와서 밝혔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언급할 가치조차 못 느낀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친문(친문재인)계 전해철 의원도 지난 1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무현, 문재인 두 분 전직 대통령님에 대한 이 전 검사의 무도한 거짓 주장과 파렴치한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②640만 달러 수수 의혹
이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측이 박 회장으로부터 총 640만 달러에 이르는 뇌물을 받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2007년 6월 29일 권 여사가 청와대에서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100만 달러를 받았다고 이 변호사는 서술했습니다.
또 같은 해 9월 22일 추가로 4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죠. 이는 아들 노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이었다는 서술도 함께였습니다. 아울러 2008년 2월 22일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에게 500만 달러를 받았으며, 이를 사업 명목으로 사용한 것도 다툼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 변호사 회고록에 유감을 표명한 노무현재단은 640만 달러 수수 의혹에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재단은 지난 17일 “박 회장에게 14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며 “권 여사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정상문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100만 달러를 빌린 것이 사실이다. 이 역시 노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재단은 이 변호사가 거론한 640만 달러 가운데 140만 달러에 대해서만 입장을 밝히고 나머지 500만 달러에는 의견을 내지 않았는데요.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이날 “모든 부분에 구구절절 반박하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내용이라는 게 재단의 판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③정상문 3억·특수활동비
이 변호사는 2006년 8월경 정 비서관이 박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또 이 사건에 노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도 덧붙였죠. 하지만 정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내놨습니다.
정 비서관은 2004년 11월경부터 2007년 7월경까지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원을 횡령하고 국고를 손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죠. 이에 대해 ‘정 비서관은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정 비서관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이 변호사의 주장입니다.
재단은 재차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재단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정 비서관이 대통령 퇴임 후를 걱정해 특수활동비를 모아놓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정 비서관의 구속과 관련해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이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냐.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이라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