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받은 아파트의 입주자 단톡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실거주와 갭투자 목적의 매매 경험이 있고 아파트 청약도 이번이 두 번째이긴 한데 실제 계약하고 입주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라 낯선 게 많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옵션 품목과 가격은 어떤지, 중도금 대출 신청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남들로부터 배울 게 많습니다.
특히 전업주부들의 톡을 보면서 살림 전문가의 포스를 새삼 확인합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설계도면을 보면서 밥솥 놓을 자리와 콘센트 여부, 중문 시공 여부에 따른 가벽 위치와 디딤돌의 폭을 두고 토론을 벌이더군요. 급기야 세탁기 놓을 다용도실 문이 여닫이인데 공간이 좁아 이걸 미닫이로 설계변경을 요구해야 한다는 중론이 모이는 데 며칠 걸리지 않는 걸 보고 이런 게 고수의 풍모로구나 절감했습니다.
하지만 수백명이 모인 곳에서 튀어나오는 불편한 주제를 봐야 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단지 옆에 붙은 초등학교에 주변 노후주택에 사는 아이들이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뒤엔 엄연히 공공보행로로 지정된 길에 (그게 조건이었을 텐데) 외부인의 통행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이게 바로 뉴스에서나 보던 그것이구나, 저런 말을 정말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구나 매일매일 놀라고 있습니다.
심지어 옆 동네에 있는 전통시장을 밀어버려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내 아파트의 값어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그곳에서 수십년 장사한 상인들의 터전쯤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없다는 투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평범한 내 이웃이라는 사실이 놀랍고 화가 났습니다.
이런 톡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우리 집 옆에 역 하나 들어올 수만 있다면 옆 동네에 혐오시설이 생기든 말든 찬성하겠다는 주장은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게 됐습니다.
자산이 수십억대에 이르지 않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집은 가장 비중이 크고 중요한 자산입니다. 거주하는 집 따로, 투자하는 집 따로인 진짜 투자자가 아닌 이상 거주와 투자를 겸하는 자산이기도 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중한 자산이기에 집값을 올릴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남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일지라도 기꺼이 몰염치를 감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안기는 방법까지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지상정의 한계는 역지사지 했을 때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한해서입니다.
나중에 아파트에 입주하고 나서 단지 주변을 오가다 그때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게 될까봐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