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우주발사체 단조립장 설립 부지로 전남 순천을 결정하면서 정권 눈치보기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해 심사당국을 압박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현 정부와 궤를 맞추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건데요.
그간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 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를 압박한다는 의혹은 여러차례 제기됐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관련해 정부의 물밑 도움을 받은 한화가, 현 정권이 챙기고 있는 순천을 콕 집어 지원함으로서 정부를 지원사격하고 있다는 게 요지입니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모습(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순천 챙기겠다"…한화, 순천 단조립장 결정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누리호 기술이전을 받은 한화는 지난해 10월 우주발사체 단조립장을 조성하기 위해 순천과 고흥, 경남 창원 등 3곳을 예비 후보지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순천시가 설립 부지로 정해지면서 고흥군이 크게 반발하는 상황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종 지역으로 순천을 선택한 배경에는 현 정부의 눈치보기라는 시각이 제기됩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순천이 호남과 대한민국 발전의 핵심 거점이 되도록 잘 챙기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또 "순천, 그리고 전남은 제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곳"이라며 "학창 시절 친구들과 순천·전남을 자주 찾았고, 광주에서 공직(검찰) 생활을 하면서 순천을 비롯한 아름다운 전남 다도해 해안에서 휴일을 보냈다"고 순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 전남 지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순천을 방문해 힘을 실어준 것입니다. 이어 순천 최대 현안인 경전선 도심 통과 노선의 우회를 지시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야권에선 한화가 이 같은 정부 기조에 맞춰 순천에 특혜성 지원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모습.(사진=연합뉴스)
김승남 "한화, 지역갈등 유발하면서 굳이 이런 결정 아쉽다"
김승남 민주당 의원(재선·전남 고흥군보성군장흥군강진군)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단조장 순천 건립에 대해 "한화에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현 정부가 순천을 챙겨 정치적인 교두보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단조장 순천 건립이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특혜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는 해석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얽히고 설킨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데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화가 처음부터 이렇게 지역갈등을 유발하면서 굳이 이런 결정을 했어야 했는지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전라남도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고흥군을 국가 우주발사체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고흥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우주발사체 단조립장 조성에 필요한 대규모 부지를 비롯해, 직원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기숙사와 아파트 등 설비보조금과 상하수도 시설비 등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우주발사체 단조립장이 고흥군에 건립될 것이라는 군민들의 기대가 커지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결국 '우주발사체 단조립장을 순천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규탄 집회하는 고흥 군민 (사진=연합뉴스)
"한화, 기업으로선 해선 안될 궁색한 결정"…"쉰목소리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절규"
김 의원은 "한화가 발사체 단조립장을 순천에 짓겠다고 한 것은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매우 궁색한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갑작스럽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단조장을 순천으로 결정하면서 '2025년까지 빨리 건설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며 "고흥 군민들의 실망이 여간 큰 게 아니다. 분노가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고흥 군민들도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우주발사체 단조립장 건립 부지로 순천이 결정된 것을 철회하라'는 단체 시위를 벌였습니다. 재경고흥군향우회는 "산나물을 캐야 할 손에 누가 시위 피켓을 들게 하는가. 삽과 호미를 내팽개치고 비내리는 아스팔트에 누가 투사로 서게 만들었는가"라며 "또 다시 젊은이들이 고향 떠날까봐 쉰 목소리로 빗소리 넘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건물에 스며들게 절규하듯 내뱉는다"고 했습니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고흥 군민들의 염원을 짓밟지 마라"면서 "고흥 군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한화는 사과하라"고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순천과 고흥이 첨예하게 맞서던 상황에서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결정으로 전남의 소지역 갈등을 조장했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단조립장 입지 선정은 다양한 항목과 기준에 따라서 최종 후보로 있던 지자체들에 대한 외부 평가를 진행했다"며 "이를 토대로 저희 기준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정부의 우주개발 정책이라든지, 전남을 발사체 특화지구로 지정한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