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올초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에 시장과 언론이 주목했는데요.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가치 제고란 기치에 많은 소액주주들이 동조하면서 과거 기업사냥꾼 이미지를 탈바꿈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이 결국 '차익 실현'인 만큼, 결과적으로 '합법적 먹튀'를 당한 투자자들의 분노가 커지는 양상입니다.
이후 에스엠 주식을 매도, 대차거래로 제공하는 등 '먹튀' 논란이 최근 불거졌는데요. 얼라인측은 "합법적 행위"라고 주장했지만 투자자들의 비난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의 두 얼굴이 드러난 순간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얼라인, 에스엠 주식 '매도·대차거래 제공'…"법적 문제 없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행동주의는 상반기 증시의 화두였습니다. 행동주의 펀드가 선택한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인데요.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순 기준,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이 진행된 기업들의 최고가 도달까지 상승률은 23%에 달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얼라인파트너스는 그 중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는데요. 작년 3월 에스엠에 라이크기획과 용역계약 종료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회사로 발송하는 등 주주 행동에 나섰던 얼라인파트너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하이브와 카카오의 에스엠 인수전 경쟁에서도 카카오의 편에 섰고, 에스엠의 우호적 주주로 남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결론적으로 카카오의 승리로 인수전이 막을 내리며 얼라인의 몸값도 올라간 셈입니다.
올라간 몸값에 취했던 것일까요? 우호적 주주로 남겠다는 입장과 다른 얼라인파트너스의 행보가 나오자 투자자들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얼라인파트너스를 100% 소유하고 있는 모회사 얼라인홀딩스가 보유했던 에스엠 주식 1만주를 지난 3월에 매도했기 때문이죠.
얼라인파트너스측은 "(에스엠 주식) 매도는 3월 21~24일 3일간 이뤄졌다"며 "해당 시점은 에스엠 4분기 실적발표 완료, 카카오-하이브 경영권 분쟁 종결, 카카오 공개매수 공표 및 진행 중인 기간이었으며 기타비상무이사 취임 전으로 법률적인 문제가 없는 시점을 택해 매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주 가치 기치를 내걸고 카카오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임에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죠.
에스엠 주식을 증권사에 대여해준 점도 드러나며 투자자들의 빈축을 샀습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3월 14일부터 에스엠 주식 26만8500주를 한 달간 증권사에 대차거래로 빌려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차거래는 주식을 빌린 후 계약기간이 끝나면 빌린 주식을 상환하는 것으로 통상 공매도의 신호로 해석됩니다.
얼라인파트너스측은 "에스엠의 우호적 주주로 남겠다는 언론 발표를 보고 증권사 여러 군데에서 주식대차 풀에 넣어주면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며 "투자자들을 위한 수익률 제고 목적으로 보유 지분에 대해 1달간 대여를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증권사 대차풀에 들어간 주식이 누구한테 대여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공매도와 연광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네요.
'차익 실현'이 목적?…KCGI·MBK파트너스, 다르지 않아
얼라인파트너스의 앞선 행보는 투자자들에 실망을 안겨주는 행동입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에스엠의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주가가 30만원을 넘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요. 앞에선 기업 가치를 말하고 뒤에선 주식 매도 처분, 대차거래 제공 등을 하며 수익을 챙겼습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행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죠.
법규와 관련해서 문제가 없다는 등의 해명 역시 투자자들을 분노케 만듭니다. 투자자들이 분노하는 부분은 불법성 여부가 아닌 행동주의 펀드로서 구축하려 했던 신뢰성 훼손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다른 사모펀드와 마찬가지로 얼라인 역시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삼고, 주가를 올려 차익실현에 나서는 것 이상의 행보를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KCGI(강성부 펀드), MBK파트너스 등 국내 유명 대형 사모펀드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CGI는 2018년
한진칼(180640)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하며 4년간 투자했습니다. 17%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고 약 3614~3776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작년 3월, 호반건설에 보유지분을 팔아 564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며 엑시트했습니다. 경영권 확보엔 실패했지만 4년 만에 수익률 100%에 이르는 차익을 챙겨간 것이죠.
MBK파트너스와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 컨소시엄은 덴티스트리인베스트먼트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오스템임플란트(048260)의 주식을 공개매수했습니다. 지난 2월부터 두 차례에 걸친 공개매수로 MBK파트너스측은 총 96.1%의 오스템임플란트 지분을 확보했는데요. 해당 지분으로 오스템임플란트의 자발적 상장폐지 과정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발적 상장폐지의 이유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공시 의무 충족 부담 덜어내기 등이 있는데요. MBK파트너스가 오스템임플란트의 자발적 상폐 이후 구조조정 등의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진행해 기업가치를 올린 후 매각할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헤지펀드는 단기차익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저해해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 이익을 선호하는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한 기업의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상황"이라며 "이름만 행동주의 펀드이지 투기세력이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미국-한국, 행동주의 목표 달라…"체급 차이 존재"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행동주의 캠페인 목적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해외 사례는 영업전략 및 이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던 반면 한국의 사례들은 재무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작년 주요국들의 행동주의 목표를 살펴보면 글로벌, 미국에선 이사회 및 경영진을 목표로 행동한 비중이 각각 34.9%, 35.7%였습니다. 한국은 22.9%였죠. 반면 재무전략의 경우 한국이 25.7%인 것에 비해 글로벌, 미국은 9.3%, 7.5%에 그쳤습니다.
최근 디즈니의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월가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가 이끄는 행동주의 펀드 트라이언은 디즈니의 지분 0.5%를 사들였습니다. 펠츠는 디즈니의 과도한 스트리밍 사업 투자, 비용 통제 실패 등을 비판하며 주주총회를 위한 위임장 확보에 나섰는데요. 결국 디즈니가 7조원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해 분쟁은 마무리 됐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조 단위 회사가 많은 반면 국내는 아무래도 규모가 작고 변동성이 대형 선진국에 비해 심하다"며 "단타, 단기 수익을 목표로 행동주의 캠페인을 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미국은 기관과 일부 개인 투자자만 주식을 하지만 한국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식을 하고 있다"며 "소수지만 선수들이 많은 미국에 비해 다수지만 선수가 없는 한국이 작은 기업을 상대로 행동주의를 하면 차익 실현 목표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3월 개최된 삼성전자 주총 현장. 사진=뉴시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