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LG계열사 등 투자 목적 변경 왜?

국민연금, 12개사 '일반투자'→'단순투자'
투자자 보유 목적 따라 시세 영향력 달라
주주권 축소 해석 가능한 사안…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약화 지적
국민연금 "개별 종목 보유 목적 관련 구체적 이유 밝히지 않아"

입력 : 2023-06-09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신대성 기자]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12개 기업들에 대한 투자 보유 목적을 '일반 투자'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했습니다. 해당 투자 목적의 경우 실질적으론 의결권 행사의 권한은 동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해석되는데요. 그럼에도 용어 선택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모입니다. 일각에선 최근 국민연금의 의결권 대리 행사 동의 없이 의결권을 행사했던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사례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란 설명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특별한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요. 5% 지분 신고에서 투자 목적에 따라 개별 주식의 시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적절한 해명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LG계열사 등 12개사 지분 변경 및 투자목적 변경
 
표=뉴스토마토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7일 국민연금공단은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약식)'라는 지분공시를 12개 올렸습니다. 이번 공시에서 국민연금은 LG화학(051910) 지분을 0.64% 늘렸는데요. 기존 6.84%에서 7.48%로 12곳 중 가장 많이 늘렸습니다.
 
이외에 LG계열사인 LG이노텍(011070)(11.16%→11.48%)·LG생활건강(051900)(7.98%→8.03%)도 지분을 추가 확보했죠. 셀트리온(068270)(7.40%→7.99%), SK이노베이션(096770)(8.31%→8.88%), SK스퀘어(402340)(6.59%→7.16%), 기아(000270) (7.46%→7.66%)도 늘렸네요.
 
반면 하나금융지주(086790)(8.91%→8.06%)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전력(015760)(7.14%→6.59%)지분은 일부 처분했습니다. SK하이닉스(000660)(8.17%→7.74%), 세방전지(004490)(5.69%→5.31%), 크래프톤(259960)(6.96%→6.47%) 등의 지분도 축소했습니다.
 
지분 변동과 관련해선 단순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이란 설명입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반적인 재무적 포트폴리오 차원으로 지분을 늘리거나 조정한 것일 수 있다"며 "개별종목에 대한 지배구조를 좌우하는 판단이라기 보다는 담당 운용역들이 수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지분 변동에서 주목되는 점은 보유 목적인데요. 기존에 일반투자로 보고되던 것이 단순투자로 변경됐습니다. 보유 목적이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5% 신고가 진행된 투자 주체의 보유 목적에 따라 향후 기업의 경영권에 관여할 만한 여지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보유목적은 크게 △단순투자 △일반투자 △경영참여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단순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줄 의사가 없고 단순 의결권 행사와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줄 의사는 없으나 단순투자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유형으로 임원 보수에 대한 지적이나 배당금을 확대하라는 등의 제안을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경영참여는 회사 임원을 선·해임할 수 있고 회사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단순투자를 하고 지침 상 일반투자로 변경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일반투자나 경영참여로 투자목적을 변경하고 주주권리 등을 행사한다"며 "이후 기업 경영 관련 주주권 행사 필요성이 없어지면 단순투자로 다시 돌아오는데 단순투자로 바뀌게 되면 공시 의무가 완화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LG이노텍, SK하이닉스, 한국전력, 세방전지 등에 대해 일반투자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인데요. 이번 공시를 통해 단순투자로 변경한 만큼 상법 상 주어지는 주주의 권리(의결권, 신주인수권 등)만을 행사하고 시세 차익에만 집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상 이번 보유목적 변경으로 12곳 회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줄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투자목적 변경, 위탁운용사 의결권 때문?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투자 보유 목적 변경을 두고 최근 발생한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이스트스프링)의 무단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때문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지난 3월 철강업체 KISCO홀딩스(001940)의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선임 건'에 대해 이스트스프링은 의결권을 행사했는데요. 감사위원 선임 안건은 특정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적용합니다. 최대주주의 높은 지분율과 상관 없이 결과가 나오게 되죠.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인 이스트스프링은 국민연금으로부터 투자 일임만 받았지 의결권은 없었다는 점이 지적됐는데요. 자체 보유 주식 833주에 국민연금에게 투자를 일임받은 2만4507주를 더한 총 2만5340주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죠. 이스트스프링의 의결권 행사로 결과는 사측이 추천한 김월기 우송세무회계 대표가 선임됐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 목적과 관련해 일반투자와 단순투자를 크게 차이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시장의 해석은 일반투자를 단순투자보단 강한 주주권 행사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발생한 사태와 관련해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위탁운용사의 국민연금 의결권 대리 행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입니다.
 
국민연금공단 대회협력단 관계자는 "국민연금기금 국내 상장주식 보유 목적 변경 기준에 따라 투자 보유 목적을 변경한 것"이라며 "개별종목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 보유 목적 변경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국민연금, 보유 목적 변경시 명확한 메시지 필요"
 
하지만 국민연금 측이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는 점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분투자를 통해 국내 기업들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행사 등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데요.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2018년 국민연금공단이 투자기업의 주주가치 제고와 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행동 지침이죠. 투자 대상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를 투명하게 보고해야 합니다.
 
즉, 국민연금은 명백한 경영진의 잘못 등에 대해 다른 주주를 대변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으며 과도한 임원 보수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행사 방법도 비공개 대화, 중점 관리기업 선정과 공개, 공개서한 발송, 주주제안 등 다양합니다. 따라서 투자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소액주주들도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소위 슈퍼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의 5% 지분 신고에서 지분 보유 목적에 따라 주가가 요동치는 경우는 국내 증시에서 흔한 일"이라며 "글로벌 기금인 국민연금의 (시장에 미치는)영향력이 막강한 만큼 지분 변동 신고와 마찬가지로 보유 목적 변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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