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채널제도 유명무실)①공익채널 도입 18년…의무송출은 여전히 3개만

공익채널 분야 10→3개로 축소…의무송출 수도 줄어
의무송출 채널 더 줄여야 한다는 유료방송
기술중립성 도입으로 무제한 채널 가능해져
ESG 조류 반영, 공익성 끌어올릴 장치 필요

입력 : 2023-08-01 오전 6:00:00
정부는 지난 2004년 '공익성 채널분야'라는 개념을 방송채널정책 운용방안에 반영하고, 이듬해인 2005년 공익채널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유료방송 시장이 본격 개화하던 시점에 문화적 다원성과 콘텐츠의 다양화, 사회문화적 필요,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 확대 등을 고려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방송의 공익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나섰던 것인데요. 이 공익채널제도의 근간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른바 공익성이란 가치가 유료방송의 시장 중심 논리와 충돌하며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재허가·재승인 제도로 방송의 공익성 제고와 공적 책임을 평가받는 지상파 사업자들과 달리, 제대로 된 평가가 요원한 유료방송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공익성 함양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취지로 공익채널이 도입된 지 어느덧 18년째. 그러나 여전히 유료방송사업자들은 공익채널에 대해선 최소한의 의무송출에만 머무는 등 소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료방송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사업자 논리가 강력한 방어기제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 가운데 헌법에서 보장한 방송의 공익성은 점차 유명무실해지는 모습인데,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더 굳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는 점입니다. 플랫폼 사회로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방송시장의 무게추가 인터넷(IP)TV·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사업자에 계속해서 쏠리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의 의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술적 문제의 경우, 이미 진즉부터 다채널이 공존할 환경이 열려 있어 더 이상 채널수 축소의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시장자율성과 공익성이 공존하는 방송환경 마련을 위해, 현 공익채널 제도의 실효성 문제 및 보완방안에 대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유료방송이 본격 성장하던 2005년 방송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을 막고 최소한의 공적가치를 확보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공익채널'이 도입됐지만, 현실 속 공익성 확대는 제자리걸음입니다. 막강해진 유료방송플랫폼사업자들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치이면서 채널번호 편성과 대가산정 목소리조차 내기 쉽지 않은 상황 속, 상업적 논리로는 설 곳 없는 공익채널의 자리는 점점 더 위축되는 모습입니다. 
 
연도별 공익채널 선정현황을 보면 방송통신위원회(당시 방송위원회)는 공익채널이 처음 선정됐던 2005년 △한국문화(한국어) △한국문화(영어) △수능교육 △초·중등 교육 △사회적 소수 대변 △환경·자연보호 △어린이·청소년 △과학·기술 △순수문화·예술 △역사·다큐 등으로 분야를 10개로 나눠뒀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공익채널은 그 분야가 점차 축소됐습니다. 급기야 2009년에는 3개로 축소됐고 이후 현재까지 △사회복지 △과학문화진흥 △교육·지역 등 3개 분야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분야가 줄어들면서 의무전송 채널 수도 축소됐습니다. 도입 당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분야별 1개 채널 이상을 의무 송출해야 했기에 총 10개 채널을 송출했습니다. 이후 2006년 공익채널 선정 분야가 8개로 축소됐고, 2007년에는 6개로 줄었습니다. 의무송출되는 공익채널 수가 지속 줄어든 배경입니다. 
 
공익채널 제도는 출범 당시 시장 메커니즘으로는 제공되기 어려운 콘텐츠를 정책적으로 제공해 방송 내용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의무송출 채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무송신이 강제될 경우 편성할 수 있는 채널 수가 줄어들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채널편성에 대한 자율권이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채널 편성권을 갖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공익채널의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무송출의 제한을 둔다고 설명합니다. 지난해 공익채널 심사위원장이었던 김효재 방통위 부위원장은 "플랫폼의 영업권과 정부 정책 사이에서 균형점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송의 공익성만큼이나 사업자들의 자율성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방송기술의 진화, ESG가 강조되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공익채널 도입 당시에는 SO·위성방송은 주파수(RF) 방식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RF방식은 가용 주파수 대역이 제한돼 채널 수 확대는 물론, 채널당 전송 용량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료방송 기술중립성을 골자로 한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SO 사업자도 기존 RF 방식뿐 아니라 인터넷망(FTTH) 기반 IP 전송방식 도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실제 IPTV사업자들은 200~300번대까지 채널을 가지며 유휴채널까지 보유해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의무송출 채널수를 제한할 명분이 상당부분 희석된 셈입니다. 동시에 전사회적으로 ESG 경영이 중시되고 있는 가운데, 유료방송의 경우 공익성 함양이 ESG의 주요 척도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영향력이 무소불위로 커지고 있는 점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는 3624만8397명을 기록했습니다. 전국 총 가구수가 2000만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1가구당 1~2개의 유료방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료방송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플랫폼의 공익적 가치를 끌어올릴 장치 마련이 시급해졌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입니다. 예전보다 더욱 막강해진 플랫폼에 개별PP가 대응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PP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부분의 PP들은 협상력이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공익성을 띈 PP의 경우에는 플랫폼에 휘둘리기 쉽다"고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료방송 시장 메커니즘 상 정부가 나서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공익채널의 존재 이유를 강조하면서, 제도 도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죠. 신문방송학과 한 교수는 "공익채널을 선정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정책 취지에 맞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통위가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사업자의 채널 편성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이 채널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방통위가 사업자에 권고하는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실장도 "다양성 관점에서 공익채널 정책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좋은 채널이 공익채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채널에 대한 현장실사뿐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심사위원 확보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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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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