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지배…역사마저 재단

육사 내 독립영웅 흉상 철거 논란 가열…윤, '반공' 앞세워 역사에도 이념적 잣대

입력 : 2023-08-29 오전 6:00:00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인천 서구 아라서해갑문에서 열린 제70주년 해양경찰의 날 기념식에 해양경찰관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정부가 '반공'이란 이념적 기준을 앞세워 '독립운동 역사 지우기'에 나섰습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군 영웅 흉상 철거 논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전체주의' 대결에 매몰된 사이, 곳곳에서 이념 잣대를 앞세운 '색깔론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척결'을 명분 삼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역사마저 제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셈입니다.
 
홍범도 지우기 나선 정부백선엽은 영웅화위험한 '이중잣대'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육사는 최근 교내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세워진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등 독립군 영웅 5명의 흉상을 철거·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군 당국은 육사 뿐만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독립군 영웅들의 공산주의 경력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앞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육사)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활동 경력을 겨냥했습니다.
 
최근 정부는 '반공주의'를 앞세워 독립운동에까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댔고, 그 결과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재단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정부의 독립군 영웅 흉상 철거 논란은 국가보훈부가 추진한 독립운동가·전쟁영웅 재평가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친일이냐, 독립운동을 했느냐'보다는 '반공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공적을 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정부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의열단을 만들어 무장독립투쟁을 벌인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과 직결돼 있다"며 깎아내린 바 있습니다. 반면 백선엽 장군의 친일 전력에 대해선 부정하면서 동시에 6·25 전쟁 영웅화 작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광주 출신 중국 혁명음악가이자,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한 정율성 선생에 대한 광주시의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거세게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박 장관은 이날도 정율성 역사공원이 추진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정율성의 행적은 도저히 대한민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며 "(중국) 공산당의 나팔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관직을 걸고 반드시 (역사공원 조성을) 저지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도 최근 참모들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취지의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2018년 3월1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독립영웅 흉상 철거 논란윤석열정권의 친일 선언"
 
최근 '육사 내 흉상 철거 추진',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저지' 모두 정부의 '반공 이데올로기 역사 전쟁'의 일환으로 분석됩니다. 그 시작은 '공산주의 척결'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이념관에서 비롯됐습니다. 취임 이후 줄곧 '자유'를 강조해왔던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8일 한국자유총연맹 69주년 기념식 축사를 계기로, '반국가세력'을 앞세워 극단적 진영대결로 몰아갔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을 향해 '반국가세력'이란 표현을 써가며 비판에 나섰습니다. 이후 지난 10일 유엔사 초청 간담회, 15일 광복절 기념식, 21일 을지훈련 국무회의 등에서 '반국가세력' 표현을 거듭 사용했습니다. 특히 광복절 경축사에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반공주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육사 내 독립영웅 흉상 철거 논란에 대해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논란이 되었던 건국절 논란이 다시 재현되는 것으로, 윤석열정권의 친일 선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방 실장은 이번 논란으로 파생되는 문제들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홍범도함의 잠수함 이름과 국방부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또 홍범도 장군 말고도 사회주의 운동을 열심히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최소 15% 이상으로, 이들의 서훈을 다 취소해야 하는데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보훈부는 이날 홍범도 장군·여운형 선생에 중복으로 서훈된 건국훈장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정치권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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