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물러선 '69시간제'…불씨는 여전

정부 "일부 업종·직종에 개편안 적용 추진"
국민 63.7% "일한만큼 임금 보장 우선돼야"
노동계 "답정너 설문…국민 우롱·혈세 낭비"

입력 : 2023-11-13 오후 5:45:30
[뉴스토마토 김유진 기자] '주69시간 근무제'로 뭇매를 맞았던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한 발 물러서는 등 사회적 대화로 궤도를 수정했습니다. 전 업종을 대상으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겠다는 방향타도 일부 업종만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총선을 의식한 여론 잠재우기용이라며 '답이 정해진 정책'이라는 날선 비판은 여전합니다. 특히 근로시간 개편을 모든 사업장에서 적용 범위를 좁힌 것뿐 ‘주 69시간’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1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63.7%가 '일한 만큼의 임금 보장'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근로자와 사업주 등 총 60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현행을 유지하면서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업종·직정에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자는 방안에는 근로자 43.0%, 사업주 47.5%, 국민 54.4%가 동의했습니다.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근로자 25.2%, 사업주 21.3%, 국민 23.9%로 나타났습니다. 
 
분야별로 보면 제조업에서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비율이 근로자 55.3%, 사업주 56.4%로 절반 이상을 넘었습니다. 
 
설문조사 참여자들은 근로자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당 상한 근로시간을 설정해야 한다(근로자 55.5%, 사업주 56.7%)고 답변했습니다. 또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을 해야 한다(근로자 42.2%, 사업주 33.6%)고 응답했습니다.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해 노·사와 국민 모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일한 만큼 확실한 임금 보장'이라고 답했습니다. 응답 비율을 보면 근로자 57.0%, 사업주 49.5%, 국민 63.7%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평소보다 더 일했을 경우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근로자 34.3%, 사업주 29.6%, 국민 44.8%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초점집단면접(FGI) 결과를 보면 답변자들은 정부가 확실한 보상 또는 확실한 휴식이 가능하도록 신경 써 달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현행 주52시간제를 유지하되 일부 업종을 대상으로 개선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노조법 관련 시위하는 양대 노총. (사진=뉴시스)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에 노동계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측은 "설문조사 문항을 보면, 답정너 질문으로 일관돼 있다"며 "전반적으로 주52시간제의 문제점 및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서 주당 상한 근로시간 설정 등 건강권 보호 방안을 논의하겠다는데 결국 정부는 주 69시간에서 60시간 혹은 64시간으로 늘리자는 것"이라며 "이러한 방안이 어떻게 건강권 보호 방안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노총 측은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가 집중적인 장시간노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국민을 우롱하는식의 설문조사"라며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이어 "정부 정책에는 노동시간 사각지대를 제도적 해결하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사용자 단체의 요구사항인 연장근로시간 확대의 의도를 숨기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데 국민혈세를 낭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노동계 인사는 "총선을 의식한 여론 잠재우기용이라고 본다. 모든 사업장에서 적용 범위를 좁힌 것뿐 ‘주 69시간’의 불씨도 남아있다고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노사정 등 사회적 대화를 통해 최종안을 도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현행 주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로 한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현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상태입니다.
 
한노총 측은 "우리사회는 급격한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저출생·고령사회 문제, 중동전쟁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저성장 쇼크의 장기화 등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며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노총은 사회적대화에 복귀해 경제 위기 등에 따른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현행 주52시간제를 유지하되 일부 업종을 대상으로 개선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발언하는 이 차관. (사진=뉴시스)
 
세종=김유진 기자 y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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