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기록적 참패를 당한 뒤,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입니다. 총선 당일부터 공개 일정 없이 숙고했다는데, 혹시 총선 패배를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요?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나 부산 2030엑스포 유치전 참패 때처럼 말입니다. 설마 2020년 총선 때 103석보다는 낫다거나, 탄핵 마지노선이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거부할 수 있는 100석은 지켰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겨우 56자뿐입니다. 내용도 상투적입니다. 아무리 비서실장을 통한 간접메시지이고 곧 직접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라 해도, 윤 대통령 본인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사실상 레임덕'이 아니라 확실한 레임덕, 그것도 데드덕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192석 야권 전체가 윤 대통령에게 극도로 적대적입니다. 국민의힘에서 쫓겨났다가 이번 총선에서 기사회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다음 대선까지 3년? 확실한가"라고 한 것이 이를 웅변합니다. 108석 국민의힘 내부도 윤 대통령에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이상 공천에 관여하지 못하는 그와 거리를 두려 할 것이고, 차기 지도부를 맡게 될 인사들 중에 적극 엄호해 줄 ‘친윤’도 거의 없습니다. 나경원·안철수 당선인은 지난 대표 경선 때 윤 대통령에게 '팽'당한 인사들이고, 김태호·주호영 당선인도 거리가 멉니다. ‘원조 친윤’ 권성동 당선인도 스스로 “윤핵관 그룹에서 빼달라”고 한 바 있습니다.
TV조선 앵커 출신인 박정훈 국민의힘 당선인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의 회담에 대해 "제가 아는 대통령은 안 만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피의자들과 뭔가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대통령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실제 이렇다면, 지난 2년과 달라지는 게 무엇입니까?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회담조차 거부했지만, 오히려 국민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다 알고 있음에도 민주당에 압도적 의석을 줬습니다. 제1야당 대표와 회담 한 번 안 하고, 온 국민이 ‘명품백 영상’을 다 봤는데도 슬그머니 넘어가려는 유례없는 불통과 아집이 유례없는 총선 결과를 만든 ‘1등 공신’입니다.
지금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는 건 대통령으로서 기본 의무이자, 국민에 대한 예의입니다. 위기 탈출은 현실 인정에서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그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번 참패가 그 추락의 바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