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민생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물가의 핵심 지표라 할 수 있는 먹거리 물가가 신선식품, 가공식품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오르면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데요. 위기를 인식한 정부는 물가 안정 자금을 투입하고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 당부를 요청하는 등 연일 물가 불안을 잡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효과는 미미한 상황입니다. 정부 방안들이 거시적 측면에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우리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경기 흐름도 악화하고 있어, 한동안 고물가 부담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옵니다.
전방위로 오르는 먹거리 물가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9(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2.9% 올랐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두 달 연속으로 3.1%를 기록했다가, 석 달 만에 2%대로 둔화했습니다. 예상보다 석유류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1% 오르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사과(80.8%), 배(102.9%)를 중심으로 신선과실이 38.7% 상승했는데요. 이중 배는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상승폭입니다.
아울러 지난달 외식물가 상승률은 3%로 전체 평균보다 0.1%포인트 높은 것으로 집계됐는데요. 외식물가가 소비자물가 평균을 상회하는 현상은 지난달까지 35개월째 진행 중입니다. 외식 세부 품목 39개 중 절반가량인 19개가 평균을 넘었습니다. 떡볶이가 5.9%로 가장 높았고 △비빔밥 5.3% △김밥 5.3% △햄버거 5% △도시락 4.7% △칼국수 4.2% △냉면 4.2% 순으로 나타났는데요.
사실상 먹거리 가격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것이 물가 고공 행진의 주요 원인인 셈입니다. 지난해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사과, 배 등 과일 가격이 급등하고 저장량은 감소한 것이 먹거리 물가 불안의 단초가 됐습니다.
여기에 지난달 총선이 끝나면서 식품·외식 기업들이 속속 제품 가격 인상 행렬에 나서는 것도 물가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는데요. 이들 업체는 원부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 해명하고 있지만, 상당수 업체들이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는 만큼 기업의 탐욕이 가미된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이 한몫했다는 분석입니다.
글로벌 악재 누적에 고물가 지속 불가피
정부 역시 치솟는 물가에 따른 위기의식을 느끼고 물가 안정을 위한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특히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장바구니 물가는 모든 경제 부처가 달라붙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외식 물가는 할당관세제도를 잘 활용해 수입 원가를 낮추고 수입선도 다변화하는 등 범세계적으로 루트와 시장을 조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 투입하고 납품단가 인하 지원 사업을 통해 대형마트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 수급 안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또 향후 식품·외식 업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물가 안정 노력을 지속한다는 계획인데요.
하지만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주부인 장모씨(44·여)는 "먹거리 물가가 가릴 것 없이 오르다 보니 외식은 고사하고, 장을 보고 집밥을 차리는 데도 비용에 대한 압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대외 불안 요인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강달러 현상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죠.
글로벌 IB 업계의 올해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추정치 비교 표. (제작=뉴스토마토)
이처럼 우리나라 고물가 기조가 고착화할 흐름을 보이자,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올해 우리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나섰습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IB 8곳이 제시한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달 말 기준 평균 2.5%로 집계됐는데요. 1개월 전인 3월 말 평균 2.4%보다 0.1%포인트 상승한 수치입니다.
이는 IB 8곳 중 5곳이 전망치를 높인 까닭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2.3%에서 2.4%로, 씨티는 2.5%에서 2.6%로, HSBC는 2.6%에서 2.7%로, 각 전망치를 0.1%포인트씩 상향했습니다. JP모건과 노무라는 나란히 2.4%에서 2.6%로 조정했습니다. 바클레이즈는 기존 전망치인 2.7%를 유지했고, 골드만삭스(2.4%)와 UBS(2.2%) 등 두 곳만 평균보다 낮은 전망치를 제시했습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농산물 가격과 유가 등 공급 측 불안 요인으로 인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기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물가 흐름이 단기간 내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아쉬운 점은 글로벌 요인이 국내에 영향을 미칠 때 이를 어느 정도 방어해 줄 수 있는 방파제 같은 정부의 거시적인 물가 안정 정책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미흡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우 교수는 "현재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부의 조기 재정 집행도 한몫했다. 이는 유동성을 줄여 물가 하락을 유도하는 보편적 방안에도 반하는 정책"이라며 "아울러 지난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착하지 못한 것도 물가 불안의 한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