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 연구, 게임사들이 데이터 줘야"

게임은 실제 폭력 요인 아냐
게임이용장애 근거 불명확
연구 위해 게임사가 데이터 줘야
"영국은 ICD-10 수용 20년 걸려"

입력 : 2024-07-05 오후 5:18:31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게임이용장애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게임사들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학계 조언이 나왔습니다.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5일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게임과물입을 논하는 세계에서의 비디오 게임과 과학'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쉬빌스키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기준의 모호성과 학계의 부족한 연구 실태를 짚었는데요. 우선 게임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연구 결과가 후속 연구들에 의해 반박돼 왔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가 5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쉬빌스키 교수는 "디지털 세계는 아날로그보다 열등한 세계라는 잘못된 인식이 존재한다"며 "비디오 게임이 청년의 폭력성을 발휘하게 한다는 이론은 1990년대 총기 사건이 뒷받침했지만,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실제 비디오 게임과 실제 폭력과는 관계가 없다는 게 입증됐다"고 말했습니다.
 
넓게는 전자기기에 대한 편견이 게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쉬빌스키 교수는 "미국과 영국인에게 물었을 때 자기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이 기준을 따른다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에 중독돼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세계 인구의 3분의1이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는데, (질병코드로) 낙인을 찍으면 게임이용장애자, 질병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해외 학계에서도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ICD-11)에 등재한 명확한 근거를 모른다는 지적, 관련 연구의 명확성을 높이는 데 게임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쉬빌스키 교수는 "누군가 비디오 게임을 이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이 사람의 게임 이용(의 정도)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며 "게임 회사가 '사유재산이라 (데이터를) 줄 수 없다'고 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도 "비디오 게임 기업이 협력해 우리가 제대로 연구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했는데요. 마띠 부오레 교수 역시 사회적 인식과 달리, 게임 이용 시간과 삶의 만족도 간에 큰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정신의학계 주장과 달리, 게임이용장애의 명확한 근거를 둔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쉬빌스키 교수는 "정신과 의사들이 틀렸다"며 "관련 연구에 뚜렷한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른 질병은 생물학적, 물리학적 근거도 있고 관찰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교통사고는 관찰할 수 있다"며 "게임이용장애는 근거 자체가 사회과학 연구인데, 그 근거가 화학과 물리학처럼 탄탄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의 의견이 반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의 무비판적인 ICD 수용 기조를 돌아보게 하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쉬빌스키 교수는 "영국에선 ICD-11 같은 정책을 도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ICD-10을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데는 20년 걸렸다"고 세미나 직전 간담회를 통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세미나엔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게임행동유형 변동 요인의 쟁점에 대한 실증 분석'을, 한덕현 중앙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인터넷게임 사용에 대한 4년 코호트 뇌 변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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