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을 공식적으로 포기했지만, 금융 계열사인 삼성생명에서는 정규직과 보험 설계사로 구성된 노조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대립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노사 협의를 거쳐 설계사 수수료 등을 변경하겠다고 약속하며 양호한 노사 관계를 구축한 삼성화재와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준감위, 노사관계 예의주시
지난 2020년 3월 당시 1기 준감위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폐기를 권고했고, 삼성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무노조 경영 철폐를 공식화했습니다. 최근엔 삼성전자 최대 규모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유례없는 무기한 총파업에 나서는 등 노사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준감위가 준법경영 등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노사 갈등 문제가 불거진 곳은 삼성 보험계열사인 삼성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생명은 정규직 3000명으로 구성된 1노조와 정규직 900명·설계사 700명으로 구성된 2노조로 나뉩니다. 현재 노사 갈등이 이어지는 곳은 설계사 조합원이 포함된 2노조입니다.
과거 설계사는 정규직이 아닌 위촉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한인 단결권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의 혜택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20년 12월 30일 고용노동부가 최초로 설계사 노조의 설립신고증을 발급한 이후 다수 보험 노조가 설립됐습니다.
삼성생명 2노조는 올해 3월부터 회사와 단체 교섭을 시작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사측이 제대로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서 진척이 더딘 상태입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말 취임한 홍원학 대표이사 사장은 2노조와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대표이사 앞으로 수많은 공문을 발송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또한 노조 소속 사무국장에게는 개인연금 회사지원분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조는 사측에서 노조 홍보물을 수거하고 있어 홍보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삼성생명 2노조는 지난 1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삼성생명과 홍원학 사장을 상대로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삼성생명이 설계사 지부의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단체협상을 태만하게 대하는 등 '무노조 경영 폐기'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삼성생명측은 노사 갈등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낼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삼성화재는 지난 5월 설계사 교섭권을 가진 삼성화재노조와 최초로 단체협약을 맺었다. 사진은 단체협약식 모습.(사진=삼성화재노동조합)
삼성생명·화재 노사관계 극과극
반면 삼성화재는 노조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문화 삼성화재 사장은 올해 초 취임 나흘 만에 첫 공식 행보로 설계사 교섭권을 가진 삼성화재노조 사무실 방문을 선택했습니다. 노조와 긍정적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지난 5월에는 삼성화재노조와 단체협약을 최초로 맺고 노조 홍보활동을 보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사측이 보험설계사 수수료 제도를 변경할 경우 조합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아 설계사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삼성화재는 삼성화재노조와 삼성화재리본노조(리본노조)로 나뉩니다. 삼성화재노조는 설계사 4500여명, 정규직 400여명으로 설계사 관련 교섭권을, 리본노조는 정규직 3500여명으로 구성돼 정규직 관련 교섭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삼성화재노조는 평사원협의회노조(현재 리본노조)에 회사 개입이 있었다면서 교섭권을 빼앗아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소속 기관 국정감사에서 삼성화재의 노조와해 의혹이 의제로 올라 삼성화재가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이문화 사장이 과거 전략영업본부장을 맡으면서 극심한 노사 갈등을 직접 겪은 것이 사장 취임 후 노사 관계에 영향을 미친 것을 풀이됩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화재의 경우 민간 보험사 최초로 보험설계사 노조와 단체 협약을 성사시키면서 업계 선례를 만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