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당대표를 뽑는 선거에 경쟁이 실종했습니다.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선 '비전' 대신 '명심'(이재명 당대표 후보의 의중) 경쟁만 존재하는데요.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과 '김민석 후보가 수석 최고위원이 될 수 있을지'만 관심사입니다. 민주당에 민주주의 핵심인 '다양성' 대신 '이재명 일극체제'만 남았습니다.
28일 충남 공주 충남교통연수원에서 열린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이 밀어주자…김민석, 주말 경선 4위→1위
이재명 후보는 지난 28일 지역순회 경선에서 누적 득표율 90.41%를 기록했습니다. 총 15회의 지역 경선 중 9차례(제주, 인천, 강원, 대구·경북, 울산, 부산, 경남, 충남, 충북)가 마무리되면서 전당대회는 반환점을 돌았는데요. 이 후보는 파죽지세로 대세론에 쐐기를 박는 모습입니다.
'24년 만의 대표직 연임'이라는 타이틀에 이어, '구대명'(90%대 득표율로 대표는 이재명) 기록까지 세울 기세입니다. 2년 전 자신이 세운 '역대 최고 득표율'(77.77%)을 갈아치우는 건데요. 이 후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앞선 경선에서 3·4위에 머물렀던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는 울산·부산·경남·충남·충북에서 모두 득표율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누적 득표율 2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누적 득표율은 정봉주(19.03%) 김민석(17.16%) 김병주(14.31%) 전현희(13.20%) 이언주(12.15%) 한준호(12.06%) 강선우(6.10%) 민형배(5.99%) 순인데요.
정봉주 후보와 김민석 후보 간 누적득표율 격차는 일주일 새 9.08%포인트에서 1.87%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표 차이는 3438표에 불과합니다. 이 추세라면, 김 후보자가 경선 1위 당선자가 맡는 '수석 최고위원' 자리를 거머쥐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수석 최고위원은 지도부 회의에서 당대표 옆자리에 앉아 발언 우선권 등을 얻습니다. '2기 이재명 지도부'의 '얼굴'인 겁니다.
김 후보의 도약에는 '명심'이 작용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입니다. 당심을 주도하는 이재명 후보가 그를 지원사격한 게 발단이었는데요.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 격으로, 사실상 러닝메이트입니다. 그런 그가 예상 밖의 부진을 겪자, 이 후보는 사실상 김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들을 내놨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 20일 경선 직후 지지자들 앞에서 "김 후보 표가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냐"며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고, 이후 자신의 차에서 김 후보와 함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김 후보를 '당대표 선거 캠프 총괄본부장'이라 칭했습니다. 그는 "전략과 정무적 판단이 최고여서 따로 부탁드렸다"며 "내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이후 '재명이네 마을' 등 친명(친이재명)계 성향 커뮤니티에선 김 후보가 수석 최고위원을 맡아야 한다는 글들이 줄지어 올라왔습니다. 이 후보의 '보이지 않는 손'이 또 한 번 개입한 겁니다. 그가 우회적으로 지지하는 한준호 후보의 상승세도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당심·민심 간극↑…차기 대선에 '독'
다른 최고위원 후보가 위기감을 느끼면서 '명심 경쟁'은 과열되는 양상입니다. 특히 지난 27일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민주당이 개딸(개혁의 딸)에 점령됐다"며 '이재명 후보 팬덤'을 직격한 김두관 후보에게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정봉주 최고위원 후보가 이튿날 충남 합동연설회에서 해당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했고, 이에 김두관 후보가 충북 합동연설회에서 재차 '전체주의'를 언급하며 사태가 커졌습니다.
분열 양상에 이재명 후보가 단상에 올라 "총구는 밖으로 향하자"며 중재에 나서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논란만 키웠는데요. 강성 지지층은 격렬히 호응하며 이 후보 이름을 연호하면서도, 동시에 '수박 척결'을 외쳤습니다. 김병주 후보는 "그동안 민주당 내부로 총구를 돌린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오늘은 룰을 깨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민석 후보도 김두관 후보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는데요.
'소수 의견을 압살한다'는 점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겁니다. 권리당원 투표 참여율은 31.49%로 '자폭 전대'라는 오명을 쓴 국민의힘 전당대회(48.5%)보다도 저조합니다. 이마저도 지난해 투표율에 비해 6.6%포인트 낮아진 수치입니다.
민주당이 표방하는 '당원 중심 대중 정당'과는 거리가 먼 성적표입니다. 결국 소수 강성 지지층이 전당대회를 주도해 당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30%가량의 강성 지지층 의사가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오역된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더해 당심·민심의 불일치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공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23~25일 조사·표본오차 95%·신뢰수준 ±3.1%포인트·무선전화면접)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3주 연속 35%를, 민주당은 2주 연속 27%를 기록했습니다. 민주당·국민의힘의 격차가 2주 연속 8%포인트 나고 있는 겁니다.
앞서 지난 25일 공표된 <NBS> 조사(22~24조사·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 ±3.1%포인트·무선전화면접)에선 '민주당 차기 대표'로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73%, 김두관 후보는 3%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반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했을 땐, 이 후보 34%, 김 후보 13%로 나타났는데요. 당심·민심이 괴리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