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선 게임에 대한 '차별적 규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현행 게임 검열법에 대한 불만은 최근 헌법소원으로도 폭발한 상황입니다.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2항 3호는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물'의 제작·반입을 금지합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해 게임물을 심의하고 유통 여부를 결정하는데요. 이 때문에 해외에선 청소년 등급으로 유통되는 게임이 한국에선 성인도 하지 못하는 폐해가 크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게이머 21만750여명이 최근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이는 헌정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정호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가 31일 화우에서 열린 '게임법과 사회질서: 지나치게 묘사하면 위법인가요?' 대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화우)
게임도 자율 규제로 충분
법조계에서도 게임에 대한 차별적 검열의 문제점을 꼬집었는데요. 정호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31일 화우에서 열린 '게임법과 사회질서: 지나치게 묘사하면 위법인가요?' 대담회에서 게임에 대한 국가 사전 검열이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차별적 규제는 다른 콘텐츠 매체에 대한 심의 현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음반과 만화 사전 심의 제도는 1996년에 폐지됐습니다. 웹툰은 웹툰 자율규제 위원회가 등급을 부여합니다. 영화·비디오물 사전 심의는 여섯 차례 위헌 결정으로, 공무 수탁사인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사전에 등급을 분류하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자체 등급 분류 사업자도 등급을 나눌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와 애플TV+ 같은 OTT는 제한 관람가 외의 등급을 자체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정 변호사는 "콘텐츠 산업에 대해 사전 통제를 하지 않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법·정책적인 국가의 태도"라며 "게임 법정 등급 분류는 꼭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선정성이 매체마다 다르게 취급되는 문제를 짚어봐야 합니다. 정 변호사는 "영화의 경우 청소년 이용 가능 등급을 받지만, 게임의 경우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을 받는 경우 국가의 일관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주는 악영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전 검열의 가장 큰 문제는 산업 경쟁력 저하입니다. 정 변호사는 "국가의 통제와 승인을 받은 게임만 유통이 가능하다면 엄청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며 "우리 게임 산업이 확률형 아이템 BM(수익 모델) 일색으로 흘러간 면이 있는데, 이런 면도 국가가 허용하는 게임을 유통하겠다는 관행이 지속적으로 누적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정호선 변호사가 화우 게임 대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화우)
그렇다면 현행 검열 제도 없이도 '청소년 보호'를 할 수 있는 걸까요. 정 변호사는 등급 연령에 맞는 본인 인증을 거쳐야 게임을 할 수 있고, 청소년은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이미 청소년 보호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게임 플랫폼 사업자 스스로 게임 유통을 통제하는 상황도 국가 사전 검열의 당위성을 의심케 합니다. 정 변호사는 "모바일 게임뿐 아니라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 게임도 전 세계에 통용되는 규범과 법정 등급 분류 기준을 준수하는 게임만 유통을 허가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통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국가의 게임 사전 검열은 위헌이라는 게 정 변호사의 결론입니다. 화학 물질과 전기용품, 생활용품 등은 국민의 신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전에 통제해야 하지만, 문화 콘텐츠인 게임은 그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 변호사는 "헌법은 위험성·안전성 관련 물품과 달리, 콘텐츠에 대해서는 사전 통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사전 검열은 헌법상 위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물리적 장소에 기반한 아케이드 게임은 사전 통제 방식이 유효하며, 사행 모사 게임은 사후 규제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정정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게임법·정책연구센터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화우)
법률 체계도 의미도 불명확
이날 대담회에선 현행법이 체계적이지 않아 혼란이 야기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정정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게임법·정책연구센터장은 현행법이 규정하는 '건전'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건전을 △건전한 게임문화 △게임산업의 건전한 발전 △건전한 유통 질서 △게임장의 건전화 △영업의 건전한 발전 등으로 열다섯 차례 언급합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합치면 열일곱 번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게임 문화도 게임물 자체도, 유통 질서도 건전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요. 특히 같은 법 16조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설립 근거로 '게임물의 윤리성과 공공성 확보'를 듭니다.
정 센터장은 "게임이 공공재도 아니고 기업이 만드는 상품에 왜 공공성을 확보하라는 건지, 입법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정원 센터장이 화우 게임 대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화우)
'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해선 안 된다는 조항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정 센터장은 "음란을 묘사하면 그냥 음란물"이라며 "형법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음란물을 묘사하면 여기(게임법)에 해당하는 게 아니고, 그냥 형법상 음란물로 적용된다"고 꼬집었습니다.
과징금 조항도 의미가 모호합니다. 게임산업법 시행령은 영업자의 영업이 '건전한 게임 문화의 조성'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에만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합니다.
정 센터장은 "건전한 게임 문화 조성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와 안 하는 경우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게 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최소한 '건전'은 법·시행령·시행규칙에서 추정할 수 있고 예측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돼야 한다"며 "여기에 기준이 잡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