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은 헌법 제54조에 의해 국회가 내년 예산안을 심의·확정해 의결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2일인 당일에도 이를 준수하기 위한 여야의 노력은커녕, 예산안을 볼모로 정쟁만 벌이고 있습니다. 내년 1%대 저성장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정부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4조1000억원 감액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민주당은 이를 본회의가 열리는 2일에 상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강행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우원식 국회의장은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을 보류했습니다. 대신 정기국회가 끝나는 오는 10일까지 여야가 합의해서 예산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똑똑히 봤습니다. 여야가 혈세 낭비 여지를 줄이기 위한 심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정쟁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말이죠. 170석 압도적 의석을 앞세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일들은 물론, '트럼프 리스크' 등 온갖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위기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입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터널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안에서는 실물경제의 3대 축인 생산·소비·투자가 5개월 만에 동반 하락하는 등 경기 부진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고, 밖에서는 다음 달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리스크 등 온갖 위험 요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외 기관들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2.0%)에도 못 미치는 1%대 전망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저성장 고착화의 우려까지 함께 말이죠.
경제 현실은 이렇게 불안한데, 국회는 예산안을 볼모로 정쟁만 벌이고 있습니다. 안일하다 못해 답답함이, 이제는 놀랍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민생·경제가 우선이라며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만 강조합니다. 677조원이 넘는 정부 예산안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데 말입니다.
예산안을 볼모로 여야가 정쟁에 몰두한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과 기업에 되돌아옵니다. 가령 청년도약계좌, 대학생 근로장학금, 청년 일경험, 저소득 아동 자산 형성 같은 사회이동성 개선을 위한 대표적 사업 예산도 대폭 삭감되면서 민생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세입·세출을 맞추는 세법 개정안도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예산이 잘려 나가니 집행상 엇박자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그럼에도 여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합니다. 민생·경제의 아우성에도 귀를 닫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현재 대한민국 경제가, 민생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점입니다. 당장 내일 먹고살 문제에 국민들은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정치권은 위기의식을 갖고 양보와 타협에 하루빨리 나서야 합니다. 나라 살림은 정략으로 농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박진아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