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새해가 새해 같지 않아요"

SF에만 등장할 것 같던 '2025년'
12·3 계엄 이후 법원 난입 폭도까지
'사회적 악폐' 국민 분노, 피로감↑
경제 흔들…내란 충격 조기 해결 여부에 달려

입력 : 2025-01-20 오전 11:35:34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정국 혼란 탓일까. 경제부처를 이곳저곳 오갈 때마다 적막한 듯 어둡고 서늘한 기분이 들곤 한다.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다. '음음적막'과 같은 분위기에 오고가는 이들의 웃음기는 사라졌다. 
 
기진한 듯 몰골이 초췌해 보인다. "왜 이리 기운이 없어 보여~ 어제 또 술먹었냐~" 평소 알고지내는 동생에게 지나가는 말로 건넨 '말마중'이었지만 고개만 간들간들 미소만 보일 뿐이다.
 
유독 아는 동생뿐만 아니다. 요즘 세종 관가 분위기를 보면 간병에 시달린 낯짝처럼 보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공상과학소설에서만 등장할 것 같던 2025년, 그것도 새해가 밝았지만 싱싱하고 힘차거나 생기가 도는 따위는 달나라로 간 건지. 하기야 겨울이면 유독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 분위기를 빼 닮은 곳이 어둡고 컴컴한 빛깔의 세종시다.
 
이날도 역진한 좀비처럼 걷던 후배에게 비슷한 유형의 말마중을 건넸더니 '그럭저럭' 심드렁히 되물을 뿐이다. 사실 오고가는 이들에게 새해 안부를 묻지만 활기찬 답변은 듣지 못하는 요즘이다.
 
 
2025년 을사년 새해 첫날인 1일 시민들이 올해 첫 해돋이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중 상당수는 밤잠을 설쳤다며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제법 있다. 대다수 '자고 일어나면 체포시도라도 한 줄 알았는데…' '체포한 것 보고 자고 싶었는데…' '매일 체포되는 날만 기다리다가 지쳐…' 등 용언은 달라도 어근의 의미는 같았다.
 
체포됐는지 보려다 밤새 SNS나 유튜브 홀릭에 빠졌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체포된 이후에는 체포적부심으로 뜬눈, 또 영장은 언제 떨어지나, 구속 후 첫 조사·불응의 과정 등 국민적 분노와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한 후배가 다가와 말하길 "선배! 새해가 새해 같지 않아요. 아직도 2024년 12월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분은 뭘까요." "원래 13월의 연말정산이 끝나야 새해 기분이 든다"며 우스개 농담을 던졌지만 '답정너'아닌가.
 
2024년 12월3일 계엄 이후 모두가 '레이노드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창백한 냉감과 통증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헌재 폐지론에 법원 난입 폭도까지 사회적 악폐로 헌정질서를 무너트리고 언론자유 유린과 민주주의 부정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폭동사태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짓밟은 폭거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 도전, 불법 폭력테러 행위이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는 정치 불확실성이 수개월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이 정치마비 상황과 분리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파손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적 환경이 양극화로 변질된 상황에서 명확한 리더십과 실효적 동력이 없는 산업 경쟁력은 수렁을 벗어나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세 정책, 중국의 과잉 생산 등과 맞서야하는 불리한 외부 요인도 경제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
 
1월 이후 불확실성 완화 전망도 사실상 조심스럽다. 만약 헌재가 3월 중순 탄핵을 인용할 경우 5월 초중순 대선이 열린 다해도 저성장 1% 쇼크를 벗어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때문에 내란 충격 조기 해결 여부에 달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재 1월 금리동결은 2월 25bp 인하 가능성으로 예측하고 있다. 2, 5, 8, 11월 각 25bp로 한 달씩 뒤로 밀린 인하 시점이 예상되고 있는 셈입니다.
 
시장에서는 1분기 추가경정예산(추경) 10~15조원, 하반기 15~20조원 추경론까지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생·경제 회복의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통화)정책은 내란 충격 이전에도 필요한 수단이었다. 내란의 신속한 조기 척결 없이는 해법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고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국민연금 선물환 매도로 대응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
 
정치 리스크의 조속한 해소가 없을 경우 국민연금 개입효과는 단기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국민연금 달러 자산의 손실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수 회복에 발목 잡는 소비 둔화도 시급한 해법이 요구된다. 한마디로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4인 가족 하락율은 4배로 커졌고 청년층·고령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1인가구의 급증세는 빈곤, 소비성향 둔화, 내수의 구조적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뚜렷한 내수 진작책은 없고 27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내수 경기와 관광 활성화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6일 간의 연속 휴일로 내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인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오히려 회의적 반응이 높다.
 
 
지난 13일 서울 시내의 한 구내식당을 찾은 직장인들이 메뉴와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욱이 긴 연휴에도 쓸 여력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주요 성수품 할인지원에도 설 차례상 비용(4인 기준)이 대형마트 기준 40만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소비 심리는 더 냉랭한 모습이다.
 
불황으로 빚을 갚지 못한 지난해 채무조정 신청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법인파산은 이미 역대 최다를 넘어섰다. 
 
어수선한 세상, 소주라도 한잔할까 싶으면 요지부동 '소주값'에 푸념만 는다. 아는 형님에게 전화했다. '5000~6000원짜리 소주한잔하자'고 했더니 '이달 궁핍하다'는 말로 돌아왔다. 설 명절도 걱정이라며 긴축재정을 선언하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신년인데, 지독한 독감만 받았다는 신세타령까지 헛웃음이 났지만, 이질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또 다시 재현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규하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