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트럼프, 상·하원 합동연설서 미국 자폐증 증가 언급한 이유

미국 자폐증 1970년대 이후 급증
백신과 자폐증 연관성 주장해온 로버트 케네디 Jr. 보건장관이 원인 규명 맡아
우리나라 자폐증 출현율도 인구 1만명 중 8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두 배 증가

입력 : 2025-03-10 오전 9:33:40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 연설에 참석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장관(사진=AP/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이 연일 국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100분 가까운 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자폐증을 언급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환경에서 독소를 제거하고, 식량 공급에서 유해 물질을 없애며,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강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일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믿기 어려운 숫자이지만—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1만명 중 1명이었습니다. 이제는 36명 중 1명입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36명 중 1명이라니,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우리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규명하는 데 바비와 함께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말한 ‘얼마 전(not long ago)’이 언제인지, 그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36배가 증가했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증가 추세입니다.
 
자폐증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이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발언 끝에 그 원인을 밝혀낼 사람으로 ‘바비’, 즉 미국 보건장관 로버트 케네디 Jr.를 직접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에 백신접종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백신 회의론자인 그는 에틸수은(ethylmercury) 제제인 티메로살(Thimerosal)이 포함된 백신이 어린이의 자폐증 발병과 관련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습니다. 20년 전에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라는 월간지와 진보적 웹진인 살롱(Salon.com)에 백신에 관한 음모론적 주장을 담은 “치명적 면역(Deadly Immunity)”이라는 글을 기고해 화제가 됐습니다.
 
기사의 핵심은 정부와 거대 제약회사(Big Pharma)가 결탁해 티메로살과 자폐증의 연관성에 대한 증거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살롱은 사실적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이 기고문을 삭제했지만, 케네디는 인터뷰와 공개 성명을 통해 이런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티메로살은 일부 백신에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방부제로 사용되지만, 대부분의 영·유아 백신에서는 제거되었으며, 일부 성인용 백신의 경우 체내에서 쉽게 배출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CDC나 WHO 등 권위 있는 보건기구의 과학적 합의는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 인과 관계를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백신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최근 텍사스와 뉴멕시코 등 미국 서남부 지역에 홍역이 퍼져 146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 중 1명이 숨졌습니다. 미국에서 홍역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십수 년 만에 처음입니다.
 
케네디는 3월2일 폭스 뉴스에 홍역과 관련한 기고문을 보냈습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백신이 “치명적인 질병을 피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하면서도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권장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신 접종 여부는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썼습니다.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제기한 것은 케네디 보건장관이 처음은 아닙니다.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1998년 2월 28일, 권위 있는 영국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에 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MMR)과 어린이 자폐증 발병 사이에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 논문이 12년간의 집중적인 임상 및 과학적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3개 대륙, 7개 국가에서 수천 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라고 밝혔기 때문에 과학계는 처음에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자폐증의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거대 제약 회사에 맞서 음모론적 인과 관계를 제시하면 불안한 부모들을 동요하게 됩니다. 더구나 1970년대 이후 CDC 등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자폐증 발병률이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 원인을 자폐증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진단 기준의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원인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제약회사나 보건당국이 백신과 자폐증이 “관계가 없다”고 입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없다”는 주장의 주체가 정부나 거대 제약회사라면 여론은 그런 ‘권력’에 동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브라이언 디어 기자가 탐사보도 기사를 통해 웨이크필드가 발표한 논문의 허구성과 그 이면의 추잡한 커넥션을 폭로하자, 랜싯은 논문을 철회했고 웨이크필드는 의사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백신 접종과 자폐증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통하지만, 자폐증의 확실한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자폐를 전문적인 용어로는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로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ADS 출현율은 2013년 전체 인구의 0.04%, 즉 인구 1만명당 4명에서 2023년에는 0.08%, 1만명당 8명꼴로 1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녀의 장애 진단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인해 장애 진단을 받고도 장애인 등록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부모들이 다수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자폐 아동의 숫자는 공식적인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동(사진=게티이미지)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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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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