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공학생물 대학원 이상협 교수(왼쪽), 채동언 교수. (사진=KAIST)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플라스틱은 ‘성형하거나 주조할 수 있는’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πλαστικ?ς)에서 나온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플라스틱은 가공이 쉬울 뿐만 아니라 가볍고 강하며 내구성도 뛰어납니다.
지금 생산되고 있는 플라스틱의 거의 대부분은 석유화학 제품입니다. 석유나 천연가스에서 나프타(Naphtha)를 추출하고 이를 분해하여 플라스틱의 기본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스티렌 등의 단량체(monomer)를 만들고 이것을 합성하여 다시 중합체(polymer),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플라스틱을 만듭니다.
플라스틱은 편리한 소재이지만 환경오염 물질이기도 합니다. 제조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는 물론 휘발성 유기화합물, 중금속 등 환경오염 물질이 배출됩니다. 또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생분해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 혹은 초미세플라스틱으로 물리적 형상만 바뀌어 생태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기존의 석유화학 기반의 화학물질 생산공정이 기후변화, 환경오염과 같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엔지니어링 된 미생물을 통하여 여러 가지 화학물질들을 생산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화학물질이나 고분자를 미생물을 통해 생산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미생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에스터 아미드를 생물학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KAIST 이상엽 특훈 교수와 채동언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포도당을 원료로 유용한 고분자화합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박테리아 균주의 유전자 조작에 성공했습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시스템은 박테리아가 특정한 영양 조건에 놓였을 때 활용하는 효소를 조작해 다양한 종류의 고분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연구진은 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Polyhydroxyalkanoates, PHA)를 생성하는 박테리아에 주목했습니다. PHA는 박테리아 세포가 충분한 탄소와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세포 성장과 분열에 필수적인 몇 가지 주요 영양소가 결핍될 때 만들어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세포가 소량의 탄소를 포함하는 작은 분자들을 연결하여 더 큰 중합체를 만듭니다. 이 미생물이 만들어낸 고분자화합물은 석유 기반 플라스틱과 달리 자연 상태에서 완전히 분해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고분자를 합성하는 PHA 합성효소(PHA synthase)는 산소 원자를 통해 분자들을 연결합니다. 하지만 아미노산에서 볼 수 있듯이 질소 원자를 통해 결합하는 유사한 화학적 연결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반응을 촉진하고 매개하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효소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며, 토양, 물, 동물의 내장 등에 존재하는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속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효소를 선택했습니다. 이 효소는 본래 특정 화합물을 조효소 A(Coenzyme A)와 연결하는데, 이 효소는 특정 분자와만 결합하여 반응을 촉진하거나 신호를 전달하는 능력인 기질 선택성(substrate specificity)이 낮습니다. 달리 말하면, 다양한 종류의 분자들과 반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험 결과 이 효소는 아미노산을 조효소 A에 연결하는 역할을 무난히 수행했습니다.
연구팀은 다음으로 환경 내성이 강한 막대 모양 세균 슈도모나스(Pseudomonas) 속 박테리아에서 나오는 효소를 사용했습니다. 이 효소에는 네 가지 돌연변이가 추가되어 있어서 원래보다 더 다양한 분자를 반응 기질(Reaction Substrate)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관 실험에서 이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아미노산들이 중합되어 고분자를 형성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대장균(E. coli) 세포 안에서 작동시키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실험 결과, 두 개의 효소 중 하나가 대장균에 약한 독성을 띠어 성장 속도를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해당 단백질을 견딜 수 있도록 대장균 균주를 실험실에서 변이시켜 두 개의 효소를 발현하는 대장균이 소량의 아미노산 고분자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박테리아의 총중량 대비 폴리머 생산 수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이에 연구팀은 대장균 균주에 몇 가지 효소를 추가하여 박테리아 총중량의 50퍼센트 이상을 폴리머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이 개발한 시스템은 매우 수용성이 높아 다양한 화학물질을 폴리머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용도에 맞춘 기능성 플라스틱을 제조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상용화까지는 두 가지 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번째는 생화학적 반응을 통해 폴리머가 생성되는 과정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비록 이번 연구에서는 발효기를 이용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농도 (55 g/L)의 고분자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추후 산업화를 수준으로 수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생산 후에도 대장균 안에 들어 있는 poly(ester amide)를 효과적이면서 싼 가격에 추출할 수 있는 정제과정 등 여러 가지 공정을 개발하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번 연구는 석유 기반 플라스틱을 대체할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제조 기술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상엽 특훈교수는 “이번 연구는 석유화학 산업 기반에 의존하지 않고도 플리에스터 아마이드(플라스틱)을 재생 가능한 바이오 기반 화학산업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서 앞으로 생산량과 생산성을 더욱 높이는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 말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3월 17일 네이처 화학 생물학(Nature Chemical Biology)에 게재되었습니다.
당(glucose)에서 폴리에스터아미드로 변형되는 화학식과 PHA 합성효소 돌연변이를 통해 폴리에스터아미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모식도(사진=Nature Chemical Biology)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