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입력 : 2025-04-07 오후 2:24:21
2024년 12월 3일 밤.
 
친한 사람들과 기꺼이 술 한잔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함께 뜻을 품고 같이 웃고 울었던 동료들. 실패할 때도 성공할 때도 있는 것이 삶이듯, 서로 위로했다. 태워주는 차에 내려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낙향해서 일하는 소싯적 친구였다. 밤 11시가 다 돼가는 시각, 전화가 걸려올 시간은 아니었다.
 
"계엄이 선포됐다. 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말이 돼?"
 
진짜였다. 속보는 비상계엄 선포를 외치고 있었다. 비현실적이었다. 집으로 뛰었다. 집에서 만난 아내와 딸은 상기돼 있었다. 계엄이라니.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도 "계엄이 뭐냐, 친구들도 난리 났다. 우리나라 망했다" 말한다. 아내도 어이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소파에 앉았다. 어떻게 하지. 가다가 잡힐 수도 있겠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바지를 청바지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조심해." 아내와 딸이 배웅했다.
 
택시를 탈까 어떻게 할까. 도로가 통제됐을 수도 있으니 지하철을 타자. 급행 9호선은 국회의상당까지 나의 몸을 빠르게 옮겨주었다. 국회의사당역 출입구는 다행히 막혀 있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너 국회 정문 앞으로 갔다. 휴대폰 시계는 10시40분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경찰과 시민, 직원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동태를 살폈다. 도서관 입구로 갔더니, 경찰이 돌돌이 문을 팔로 잡아서 막고 있었다.
 
"말이 돼요? 직원들은 넣어주세요" 소리쳤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한 국회의원은 이미 앞을 막아서는 경찰에게 말하는 것도 포기했는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로 옆에서 항의하는 사람도 "직원은 넣어줘요" 소리치며 출입증을 보여줬다. 그래도 경찰은 미동도 없다.
 
"누구세요?" 물었더니 "국민의힘 대변인이에요" 답한다. 여당 국민의힘 당직자도 안 들여보내주는 계엄. 국회 앞 정문 쪽은 막혔다. 안 되겠다.
 
서강대교 쪽을 보며 걸었다. 경찰이 2~3미터 간격으로 서 있었다. 서강대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철제 담장을 넘어보기로 했다. 눈치를 보면서, 발을 올리고 손으로 힘을 주는 순간.
 
"넘어가지 마세요!" 달려오는 경찰이 보인다. 포기했다.
 
뒤로 가자. 서강대교 쪽 담장 모서리를 돌아 윤중로로 향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보초를 서는 경찰들의 간격이 헐거웠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며 동태를 살폈다. 사랑재 뒤편이었다. 다행히 가로등이 없었다. 인도와 도로 사이에 경찰 버스가 서 있어서 엄폐도 됐다. 이때다.
 
철제 담의 홈을 밟고 올라갔다. 손에 힘을 주고 몸을 올렸다. 내려다보니 은근히 높았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라. 뒷발이 담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뛰어내렸다. 성공.
 
사랑재 위로 올라가서 잔디밭으로 갔다. 사랑재 쪽에서 본청을 보니 철모 쓰고 군복 입은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본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난 아니구나, 싶었다. 예닐곱명의 군인들이 깨진 유리창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윤석열씨가 지난해 12월3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본청 앞으로 뛰어갔다. 현관 앞에는 군인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서 있고, 보좌진과 시민들이 지키고 있었다. 군인들을 봤다. 철모를 썼고 그 위에는 야간투시경을 달았다. 총을 들었고 탄창은 끼워져 있었다. 직감했다. 최소한 저 탄창 안에는 공포탄은 들어있겠구나. 설마, 실탄이 있으려나. 군대에서 총에 탄창을 끼운다는 건, 빈 탄창이 아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다 안다.
 
해군 출신인 나는 이날 야간투시경을 처음 봤다. 특공대에 지급되는 수천만원 고가의 장비라고 한다. 야간투시경을 무엇에 쓰려고 달았을까. 불 꺼진 야간 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된 장비를 국민이 구성한 국회를 봉쇄하는 계엄 작전에 쓰다니. 이 광경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대로 보이는 앳된 남성 군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 군인들도 간혹 보였다. "어디서 왔어요?"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옆에 있던 한 동료가 말해줬다. "특전사 공수부대, 수방사 특임대다." 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국회에서 총 든 군인들을 보다니.
 
하늘에서는 두두두 소리가 들렸다. 헬기 두세대가 의원회관과 본청 사이, 하늘 위로 날아왔다. 본청 뒤편 운동장 착륙을 목표로 날아가는 모양새다. 이것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국회에서 군인들이 탄 헬기를 보다니. 어두컴컴한 밤하늘, 비현실감이 몰려왔다.
 
옆에서는 말했다. "군인들 자극하지 말자. 잘못하면 큰일 난다." 군인들에게는 "흥분하지 마라. 명령에 따르지 마라. 다 구속된다" 강조하는 말도 들린다.
 
갑자기 한 무리의 군인들이 본청 앞으로 또 밀고 들어왔다. 이삼십명 정도 돼 보였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본청 현관 앞에 일렬로 섰다. 서로 팔짱을 꼈다. 밀고 들어오니 막아야 한다. 계엄 해제 의결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군인들이 작정하고 밀고 들어오면 우리는 밟히겠지. 만약 총을 쏜다면 맞아서 죽는 거겠지. 머릿속을 스쳤다. 다행히 군인들이 현관 앞까지 쉽게 들어오지는 못했다. 1차 방어선에 선 사람들이 잘 막아서고 있었다.
 
이때 사진이 찍혔다. 한 일간지 기자가 찍은 군인들에 쌓인 국회 본청 앞 사진. 보도사진전에서 큰 상을 받은 사진인데, 철모 큰 군인들의 뒷모습 넘어, 현관 앞에 작은 나와 동료들이 서 있다. 뭔가 소리치고 있는 듯한 모습. 최소한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됐다. 죽었을 수도 있겠지.
 
그때다. 누군가 소리쳤다. "정족수를 다 채웠다. 이제 너희들 다 끝이다." 이 소리를 들어서 그랬는지 다른 명령을 받았는지, 군인들은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본회의장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계엄 해제안이 상정됐고, 의결됐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박수쳤다. 나도 환호했고 박수쳤다. 그때가 새벽 1시 좀 넘은 시간이었던 거 같다.
 
여기가 어디고 이게 무슨 일인가.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못했다. 마흔넷 생애에서, 계엄의 순간을 목도했다. 이곳이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나.
 
'나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파괴됐다. 계엄세력은 시민 개개인의 민주주의를 파괴했고, 헌법을 위반했고, 헌정 질서를 무시했다. 시민의 삶을 파괴했고 나라와 경제, 사회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리고 반성하지 않는다. 나의, 당신의,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지 못했다.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다행히, 헌재가 윤석열 파면을 선고했다. 나의 민주주의는 최소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 이제, 진짜 나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갈 일이 남았다.
 
최창민 나의민주주의센터 소장('그럭저럭 인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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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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