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린란드 국립공원 내 디킨슨 피오르의 히싱거 빙하 전방 종말부에서 발생한 빙하 붕괴. 빙하가 전진하면서 큰 빙산 조각들이 떨어져 물에 빠지고 있다.(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2023년 가을, 전 세계를 당혹하게 만든 정체불명의 지진 신호가 마침내 그 비밀을 드러냈습니다. 90초마다 반복되며 지구 전체를 울렸던 이 신비로운 진동의 정체는 바로 그린란드에서 발생한 메가 쓰나미가 만들어낸 '갇힌 정지파(seiche)'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은 최신 위성 기술을 이용한 고도 측정법을 활용해 이 현상을 최초로 직접 관측했다고 밝혔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갇힌 정지파 현상의 관측(Observations of the seiche that shook the world)’이라는 제목의 획기적인 연구는 이번 주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습니다.
2023년 9월과 10월, 90초마다 반복되는 기이한 지진파가 전 세계 지진관측소에 포착됐습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 지진파의 원인을 놓고 수많은 추측이 난무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몇몇 과학자들은 소규모 화산 활동이나, 심지어 외계에서 온 신호라는 설까지 제기하며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의 제1저자인 옥스퍼드 대학 공학과학부의 토마스 모나한(Thomas Monahan) 박사과정 학생과 토마스 애드콕(Thomas Adcock) 교수 연구팀이 이 파동을 추적했습니다. 그들은 2022년 12월에 발사되어 지구 표면의 90%에 걸친 물 높이를 지도화하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수면 해양 고도 측정 위성 Surface Water Ocean Topography(SWOT)의 데이터를 사용했습니다. SWOT의 핵심은 위성 양쪽에 10미터 길이의 붐에 장착된 두 개의 안테나를 사용하는 최첨단 레이더 간섭계인 Ka-band Radar Interferometer(KaRIn) 장치입니다. 이 두 안테나는 레이더 펄스에서 반사된 신호를 삼각 측량하여, 30마일(50km) 폭의 띠를 따라 해양 및 표면 수위를 전례 없는 정확도(최대 2.5m 해상도)로 초정밀 측정합니다.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이 지진 현상은 그린란드 동부의 디킨슨 피오르(Dickson Fjord)에서 빙하가 녹아내려 촉발된 거대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유발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산사태가 일으킨 메가 쓰나미가 좁고 긴 피오르 내부에 갇혀 지속해서 앞뒤로 진동하는 정지파가 만들어졌고, 이 파동이 전 세계 지각을 흔든 것입니다.
특히 연구진은 SWOT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피오르 지역의 해수면 높이 차이를 명확히 측정했습니다. 최대 2미터에 이르는 해수면의 높이 차이가 피오르 내부를 왕복하며 지속된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 자료를 통해 연구진은 파동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재구성했으며, 이로써 과거 미스터리였던 지진 신호의 원인을 확실히 밝혀냈습니다.
모나한 연구원은 “기후 변화로 인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극한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특히 북극과 같은 원격 지역에서는 이를 관측하기 어려웠다”면서 “이번 연구는 차세대 위성 관측 기술이 이러한 미지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말했습니다.
공동 저자인 애드콕 교수는 “이 연구는 과거에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현상을 차세대 위성 데이터로 해결할 수 있는 사례다. 우리는 쓰나미, 폭풍 해일, 이상 파동과 같은 해양 극한 현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기계 학습과 해양 물리학 지식을 결합해 새로운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혁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연구진은 위성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의 파동 특성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각의 미세한 움직임과 연결해 재구성했으며, 바람이나 조류의 영향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밝혔습니다. 기존의 지상 관측 장비가 이러한 극한 현상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위성 데이터의 활용은 관측 방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우리가 극한 현상을 더욱 면밀히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적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며, “기후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더욱 정밀한 관측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고 정밀 관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번 연구는 해양과학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현상을 다루는 연구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관측되지 않았던 이 미스터리에 쌓여있던 파동이 최초로 명확히 포착됨에 따라 향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유사한 극한 현상들에 대한 분석과 대비책 마련에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2023년 10월 11일 동그린란드 디킨슨 피오르 상공에서 관측된 지진파의 해수면 높이 측정값이 Copernicus Sentinel-2 위성 이미지에 중첩된 모습.(사진=옥스퍼드대 Thomas Monahan)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