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갯벌에서 장다리물떼새 어린 새가 어미 품으로 다가서고 있다.
모내기 끝낸 논에 따사로운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고 갯벌 위에 내리쬐는 햇살이 소금처럼 부서지는 여름, 그 한복판을 성큼성큼 걷는 새가 있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분홍빛 다리, ‘삑-삑, 삐빅’ 맑고 경쾌한 울음소리를 내며 갯벌 이곳저곳을 부리로 바쁘게 훑는 이 새는 장다리물떼새(Himantopus Himantopus, Black-winged stilt)입니다.
장다리물떼새는 이름 그대로 긴 다리를 가졌습니다. 그 덕분에 갯벌이나 논 습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진흙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곤충이나 수서생물을 즐겨 먹습니다. 주로 간척지, 논, 염전처럼 수심이 얕고 주변이 트여 있는 습지를 선호합니다. 4월에서 6월 사이에는 물가 얕은 곳에 풀잎과 진흙을 모아 둥지를 틀고 한번에 3~5개의 알을 낳습니다.
둥지는 트인 공간에 덩그러니 알을 낳는 여느 물떼새들처럼 투박하고 단순합니다. 문제는 물가에 낳다 보니 작은 수위 변화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물이 너무 차오르면 알이 물에 잠기고, 거꾸로 물이 마르면 둥지를 보호해줄 습지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원활한 번식이 어렵습니다. 물 높이가 적당히 유지되어야 알에서 어린 새가 무사히 부화할 수 있고, 비로소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슬아슬한 경계의 삶을 사는 장다리물떼새의 모습을 영종도 남쪽 홍대염전에서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긴 다리로 물살을 가르며 걷던 장다리물떼새 한 마리가 진흙 속에 조심스럽게 웅크려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연일 이어진 집중호우로 여느 때보다 수위가 높아 걱정되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만조가 되어 불어난 물이 서서히 둥지를 덮쳤습니다. 놀란 장다리물떼새는 진흙을 물어와 둥지를 높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알은 끝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생명 하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일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입니다. 좀 더 좋은 곳에 둥지를 틀 수 있기를 바라며, 우두커니 서 있는 장다리물떼새의 뒷모습을 뒤로 한 채 무력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듬해에는 자연의 섭리와는 다른 이유로 장다리물떼새의 삶이 더 큰 위협에 처했습니다. 그동안 열려 있던 홍대염전의 수문이 닫힌 것입니다. 과거 이곳은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이었지만, 2001년 인천공항이 만들어진 후로 폐염전으로 남았습니다. 사람의 손이 덜 닿은 덕분에 줄곧 다양한 물새들이 휴식처이자 먹이터, 번식지로 삼았습니다. 특히 장다리물떼새가 인천에서 유일하게 번식하는 곳도 바로 이곳 영종도였지요. 홍대염전의 수문이 열려 있을 때면 이 둥지터에는 밀물에 따라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바닷물이 염전터 안에 얕은 물을 채워주며 습지를 만들어주었지요. 그 습지가 있었기에 장다리물떼새는 물론 꼬마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알락꼬리마도요, 저어새 같은 다양한 물새들이 계절마다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물길이 끊기자 50만㎡에 이르던 습지는 빠르게 말라갔고, 새들은 머물 곳을 잃었습니다. 이 일대는 인천시가 2026년까지 전부 매립하고 반도체 특화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그 일환으로 이미 습지의 물을 빼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어미를 따라 사냥에 나선 장다리물떼새 어린 새들.
장마로 둥지를 잃었던 그 장다리물떼새는 다시 돌아와 새 둥지를 만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다만, 수문이 닫히고 물이 끊긴 지금은 그 기회조차 사라졌습니다. 번식지를 잃는다는 것은 단지 둥지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닙니다. 그곳을 찾는 새들의 생의 한 계절, 한 세대를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에요. 번식 기회를 놓친 개체군은 세대를 거칠수록 점점 수가 줄어들고, 그 지역에서의 존속이 어려워집니다.
자연은 때때로 냉혹합니다. 기후변화나 수위의 급격한 변동처럼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변화는 그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들을 매몰차게 밀어내곤 하지만, 장다리물떼새가 살아가던 이 염전터의 변화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단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장다리물떼새는 인간에게 설명을 요구하지도, 책임을 따져 묻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둥지를 잠기도록 지은 자신을 탓하고 있을까요, 둥지터를 말라버리게 한 세상을 탓하고 있을까요? 알 수는 없습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습지와 둥지를 틀 수 있는 땅,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허락되는 안락한 계절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작은 영역을 지키려 애쓰는 이 작고 경이로운 생명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개발 계획에 생태적 가치를 반영해달라 하늘에 대고 외쳐볼까요? 습지 보전 활동을 지지하거나 함께 참여해볼까요? 슬금슬금 습지에 버려진 쓰레기라도 주워가며 장다리물떼새를 멀리서나마 응원해볼까요? 논과 갯벌을 성큼성큼 걷는 그 낯익은 긴 다리의 장다리물떼새를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에 힘을 실어봅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