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투자자 보호를 위해 비상장주식 유통플랫폼 내 주식을 일반종목과 전문종목으로 나눈 결정은 오히려 일반인들의 비상장 우량주 접근을 막고 적자기업 투자는 열어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일반종목 지정심사를 신청 기업으로 제한한 금융위원회 지침이 원인인데요. 금융위는 대기업들이 일반종목 신청을 피하는 이유를 기업의 공시 부담 증가라고 지목했지만, 규모가 큰 비상장 대기업들은 이미 상장기업에 버금가는 공시의무를 이행 중입니다.
금융위의 지침은 비상장주식 투자자들의 불만을 키운 것은 물론 비상장주식 유통플랫폼들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된 상황이지만, 이제 곧 금융당국으로부터 장외거래중개업자로 인가를 받아 제도권에 편입해야 하는 플랫폼 업체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종목 회피, 공시의무 때문?
혁신금융서비스 플랫폼의 비상장주식 거래를 일반종목, 전문종목으로 구분한 지 3년이 경과했습니다. 그 사이 일반투자자들이 매매할 수 있는 종목 수는 15개에서 20여개로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1000개가 훨씬 넘는 전문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성장이 더딘 배경엔 금융위의 지침이 있습니다. 일반종목에 지정하려면 각 플랫폼의 위원회가 심사하는데, 신청은 당사자인 기업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주주가 늘어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에 일반종목 신청이 극히 적어서 생긴 현상입니다. (관련기사☞
투자자 보호? 우량 비상장주 투자 막는 금융위)
(사진=금융위원회)
이와 관련, 혁신금융서비스 제도를 담당하는 금융위 자본시장과 담당자는 일반, 전문종목 구분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만든 규정임을 강조하며 “일반종목이 되면 기업들로선 공시의무 등 할 일이 많아져 꺼리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실제로 일반종목과 전문종목 기업의 공시의무엔 차이가 있습니다. 금융위는 지난달 8일 자본시장 주요 혁신금융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규정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여기에 비상장주식 유통플랫폼 내 일반종목과 전문종목의 공시의무에 관한 내용이 담겼는데요. 그에 따르면 일반종목 기업은 연 2회 발행인에 관한 사항, 회계감사인의 감사보고서 및 반기검토보고서 공시가 필수입니다. 또 주요 경영사항이 발행했을 때 수시공시를 해야 하고, 풍문·보도 사실관계 확인 조회공시 의무도 집니다. 이를 위해 공시 담당자 1명을 지정해 상시관리토록 했습니다. 전문종목은 이런 공시의무 부담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종목으로 분류된 주식을 발행한 비상장기업도 일정 규모 이상은 이미 이와 유사한 공시의무를 이행 중입니다. 자산총액 500억원 이상, 매출액 500억원 이상인 기업 또는 △자산 120억원 △부채 70억원 △매출 100억원 △종업원 100명 조건 중 두 가지만 해당돼도 법에 따라 외부감사를 받고 그 내용(감사보고서)을 공시해야 합니다.
또한 규모가 더 큰 대기업들은 사업보고서와 분기 및 반기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사항도 공시합니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경우엔 더 많은 공시의무를 집니다. 투자자들도 이들이 제출한 상장기업에 버금가는 전자공시를 참고해 투자하고 있습니다. 즉 규모가 큰 비상장 대기업의 경우엔 일반종목이 된다고 해서 업무량이 폭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과 비상장주식 투자자들은 한목소리로 일반종목-전문종목을 구분하는 기준 등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투자자는 “전문종목 중엔 우량한 대기업보다 언제든 부실화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더 많으니까 종목을 구분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기업내용과 재무상태가 우량한 대기업 주식은 일반인도 투자할 수 있게 열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주가 상승률 전문종목 잔치…거래량 일반종목 월등
대기업들의 일반종목 신청이 저조한 탓에 비상장주식 플랫폼 업체들의 성장도 더딥니다. 증권플러스 비상장은 앱에서 최근 3개월간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들과, 해당 플랫폼 시세 기준 예상 시가총액 상위 종목, 거래가 많은 종목 등을 순위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시총과 주가 상승률 상위는 대부분 전문종목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상승률 10위권 안엔 최근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를 호재로 급등한 두나무와 빗썸만 일반종목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핑크퐁 열풍의 주인공 더핑크퐁컴퍼니가 상승률 1위로, 2023년 3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을 지난해 188억원으로 키운 강소 기업입니다. 현재 기업공개(IPO)를 진행 중인데 비상장주식 플랫폼에선 일반인의 접근은 불가능합니다. 즉 전문종목으로 분류된 대기업들은 자산 규모가 크고 실적이 우량할 뿐 아니라 주식투자자들의 성과도 좋았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합니다.
이와 달리 주식 거래가 많은 인기종목 명단엔 일반종목들이 상위에 포진해 있습니다. 기업 규모와 실적은 열위인데 일반투자자들의 거래가 몰린 결과 나타난 현상입니다. 만약 일반종목 수가 지금보다 증가한다면, 그중에서도 실적과 기업내용이 좋은 우량 대기업 주식이 일반종목에 더 많이 편입되면 해당 플랫폼을 통한 비상장주식 거래 성과도 지금보다 월등하게 집계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상장주식 플랫폼 업체들도 플랫폼 내에선 일반종목의 거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일반종목 신청기업이 늘어나길 바라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에 따른 특례를 적용받아 시작한 사업인 데다, 오는 9월30일 혁신금융서비스 제도화 관련 시행령 및 규정이 시행되면 장외거래중개업자로 라이선스를 따야 하는 입장이라 규정과 제도 등에 관해서는 일체 발언을 삼가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고충이 있겠지만 최소한 매출이나 자본금이 수천억대인 기업들, 이미 주주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경우라면 해당 기업의 신청이 없어도 일반종목으로 지정할 수 있게끔 단계적으로 열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혁신금융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 단계고, 관련 기준도 계속 변경했다”며 “일반종목, 전문종목 기준에 대한 지적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