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민노당이 그리운 이유

입력 : 2025-07-29 오후 1:51:53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2017년 초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전에 다니던 신문사 정치부 소속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출입하고 있었다. 민주당 공보국과 점심 자리, 강선우 의원을 처음 만났다. 그때 그는 의원이 아닌 당 부대변인이었다. 같이 온 공보국장(?)과 앞으로 벌어질 대선 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박근혜 탄핵으로 5월 장미 대선이 점쳐질 때였다. 공보국장이 주로 얘기했고 기자들은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 있던 당내 분위기에 대해 묻곤 했다. 그날 강 부대변인은 별 말이 없었다. 자리를 파할 무렵, 그가 한마디를 겨우 했는데 공보국장이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면박을 줬다. 어떤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국장의 지청구에 머쓱해하던 그의 모습만 머릿속에 남았다. 세련된 옷차림이 그동안 봐오던 민주당 당직자들과는 달라서 어딘지 교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실제 그는 그즈음 성균관대학교 소비자가족학과 겸임교수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떼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짧은 보좌관 생활을 했다. 한 비례 초선의원실에서 근무할 때, 강 의원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 방에서 근무하던 비서관이 우리 방으로 이직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들리는 후문으로 강 의원의 갑질을 견디다 못하고 그만뒀다는 얘기였다. ‘의원이 아니던 시절 봤던 첫인상과는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더해 보좌진들 사이에선 ‘의원회관 XXX TOP 3’ 같은 명단도 돌았다. 어느 재선의원이 보좌진을 복도에 세워두고 30분 동안 고함치며 혼냈다는 얘기, 어느 의원실은 의원 등쌀에 한 달 만에 보좌진이 전부 교체됐다는 얘기, 어느 초선의원은 '왜 자신에 대한 기사가 안 나오냐'며 보좌진을 매일 조리돌림했다는 얘기, 심지어 국회의장을 지낸 어느 다선 의원은 병원 진료 뒤 본인 바지까지 보좌진에게 입히라고 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모두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좌진에게 여의도는 분명 ‘갑들의 천국’이었다. 기자로 국회를 출입할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좌관이 돼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좌관이 돼서 의원이 이동할 때마다 "의원님 나가십니다"라는 문자가 공유되고 보좌진이 동선대로 따라붙어서 수행하는 모습이 영 어색했다. '다 큰 어른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물론 이런 의전이 국회만의 풍경은 아니다. 누구의 말처럼 대한민국엔 '수령'이 너무도 많다. 
 
강 의원의 갑질 논란이 터졌을 때, 그것이 별로 새롭지 않았던 것은 그에 대해 내가 귀동냥을 해서가 아니라, 국회라는 공간에서 의원과 보좌진 관계의 기본 세팅 값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최근 강 의원에 대해 비판했던 동료 의원 중 한 명이 위에서 언급한 한 사례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실소가 나올 뿐이었다.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갑질 논란에서 국회의원 300명 모두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만든 보좌진들은 정작 그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의원들을 상전 모시는 의전 문화가 여전하고, 의원들도 그걸 기꺼워하거나 되레 누리려 하는 풍토가 만연한 그곳에서 갑질 논란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런 점에서 참모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의견을 받아들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의도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 
 
결국 지금보다 국회의원 수를 배 가까이 늘리고 특권은 없애는 일이 시급할 터인데, 문제는 우리 '의원님'들이 반대하리라는 것. 의원과 보좌진의 수평적 관계를 실험했던 민주노동당이 유독 그리운 이유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오승훈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