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러시아·미국·중동 등 주요 산유국의 석유 공급 차질로 정제마진이 고점을 향하면서, 상반기 내내 부진했던 국내 정유업계가 숨통을 트일 전망입니다. 정제마진 강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석유 정유사들의 하반기 실적 반등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충청남도에 위치한 대산석유화학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4달러로, 지난해 2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상반기 내내 3~6달러에 머물던 정제마진은 6월부터 반등해 8달러를 넘긴 데 이어 지난달 11달러, 이달에는 14달러선까지 올라왔습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원료비를 뺀 값으로, 업계는 통상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봅니다.
정제마진 급등의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 위축이 있습니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과 석유 수출 거점을 드론으로 집중 타격하면서 러시아의 정제 처리량은 하루 500만 배럴 수준으로, 2022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러시아가 휘발유 수출 금지를 연말까지 연장하고 경유 수출까지 중단하자 글로벌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반등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공급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이달 초 캘리포니아 남부 셰브론 정유공장 항공유 설비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가동이 중단됐는데, 이 시설은 일일 정제능력 28만5000배럴로 지역 내 자동차 연료의 20%, 항공유의 40%를 담당하는 핵심 거점입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의 항공유 대미 수출이 늘었으며, 지난 8월 한국의 대미 석유제품 수출은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수출의 약 75%를 차지하는 항공유가 증가세를 주도했습니다.
정상화되지 않은 중동의 공급 여건도 한몫했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다음달부터 하루 13만7000배럴 증산을 결정했지만, 정기 보수와 노후 설비 폐쇄로 실물 증가는 제한적하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외신에 따르면, 이미 정유소 두 곳을 폐쇄한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몇 달 안에 추가 시설 가동을 중단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람코의 사토르프 정유공장은 11월과 12월에 60일간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며, 리야드 정유공장도 4분기에 정기 점검을 계획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CLX)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이와 함께 정제마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글로벌 정제설비 순증설은 매년 30~50만 b/d(하루당 배럴) 수준에 불과한데, 수요 증분은 80~100 b/d”이라며 “2026년에도 정제마진 강세는 불가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상반기 실적이 좋지 못했던 정유사의 실적 반등이 기대됩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664억원으로, 전 분기 적자에서 흑자 전환이 예상됩니다. SK이노베이션도 2019억원의 영업이익이 전망돼 수익성 반등이 기대됩니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 역시 유사한 개선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이들 국내 정유 4사는 지난 상반기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에쓰오일은 3655억원, SK이노베이션은 9064억원, GS칼텍스는 1414억원, HD현대오일뱅크는 2101억원의 영업손실을 겪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재고평가손실(원유 매입가와 판매가 차이로 인한 손실) 확대로 인해 부진이 있었다”면서도 “9월 이후 정제마진이 개선되어 하반기 실적 만회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