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1일 일본의 새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강경 보수 성향의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까지 새로운 연정 상대로 끌어들이면서 우여곡절 끝에 총리직을 거머쥔 겁니다. 일본 헌정사상 여성이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카이치 신임 총리는 경제 부문에서 재정 확장·금융 완화 정책을 펼치며 '아베노믹스'를 계승한 '사나에노믹스'를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가운데) 일본 자민당 총재가 21일 일본 임시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제104대 총리로 선출된 후 박수로 축하하는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명당 이탈' 우여곡절 끝에…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중의원(하원) 본회의 총리 지명 선거에서 전체 465표 가운데 237표로 과반(233표)을 확보해 결선투표 없이 총리직을 확정했습니다. 이어 열린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는 123표로 과반에 1표가 부족했지만, 결선투표에서 125표로 과반을 기록해 일본의 104대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총리 지명 선거는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에서도 별도로 실시되지만, 결과가 다를 경우 중의원 투표를 우선시하고 있어 일단 중의원, 참의원 선거를 모두 실시하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과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습니다. 일본 정계에서는 드문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유리 천장'을 깨며 강경 보수 성향의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이번 총리 지명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일본 근대 역사 140년 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에 등극했습니다.
새 내각의 출범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이날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총사퇴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출범한 이시바 정권은 386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총리직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는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대결에서 승리해 총리 자리를 예약한 듯 보였지만, 10일 공명당이 연립여당에서 이탈한다고 선언하면서 총리 선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자민당이 중의원과 참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공명당까지 떨어져 나가며 총리 지명 선거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강경 보수 성향의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새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면서 총리직을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총리 선출이 완료되면서 이른바 '다카이치 내각'도 정식 출범합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에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 외무상에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을 기용하기로 했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 경쟁자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과 하야시 요시마사 의원은 각각 방위상, 총무상으로 내정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과감한 돈풀기 '예고'…재정 확대 기대감에 닛케이 '최고치'
극우 성향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적자로 통하며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 부분에서 아베 전 총리의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잇는 '사나에노믹스'를 내세워 재정 확장과 금융 완화, 성장 투자 정책 추진을 예고했습니다. 과거 아베노믹스가 취해온 정책과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증가한 세수로 재정을 정상화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또 자민당 총재 선거 때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 국채 발행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는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재정정책이든 금융정책이든 책임을 지는 것은 정부"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성장을 위한 투자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지방자치단체 대상 중점 지원 교부금 확충,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세액 공제 신설 등 상당한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돈이 풀릴 것이란 기대감에 일본 증시 주가지수도 연이틀 장중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공식 선출되자, 닛케이225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27% 오른 4만9316에 장을 마감하며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오전 11시쯤엔 장중 최고치인 4만9945를 기록하며 사상 첫 5만 선 돌파를 목전에 두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처럼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로 인해 주식시장에서 '다카이치 거래'가 발생해 닛케이지수를 밀어올렸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의 적극적 재정정책은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고물가 대응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기에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소 다로 부총재나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 모두 재무상 경험이 있어 재정건전성이 우선 고려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민당의 새 연정 파트너인 일본유신회도 재정건전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