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개인 자금이 원화 예적금 대신 달러로 옮겨가는 '원화 엑시트'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은행보다 자금 유출에 취약한 저축은행권의 유동성 부담이 커지는 모습입니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안정계정 도입 필요성이 커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원·달러 환율 장중 1475.4원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화 예·적금 대신 달러 예금을 택하거나 원화 예치를 미루고 달러로 곧장 환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75.4원을 터치했고, 개장가도 전날보다 3.3원 오른 1469.0원이었습니다. 약 7개월 만에 원화 가치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지난해 비상계엄 국면 당시 윤석열정부 시절 기록한 1480원선에 근접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거주자 외화예금은 1076억4000만달러로, 전월(1051억5000만달러) 대비 24억9000만달러 증가했습니다. 특히 달러화예금은 전월보다 22억4000만달러 늘었습니다. 9월로 넘어오면서 전체 외화예금은 1070억9000만달러로 소폭 감소했지만, 개인 외화예금은 전월(146억9000만달러) 대비 1억5000만달러 늘어난 148억30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원화 자산보다 달러 예치를 선호하는 현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증가 폭이 더욱 뚜렷합니다. 원·달러 환율이 900~1000원대였던 2007년엔 외화예금은 200억 달러 내외였습니다. 당시 개인 외화예금은 35억달러 안팎으로 현재와 비교해 약 4.2배가량 높은 비중의 차이를 보입니다.
달러를 직접 사 모으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투자자 A씨는 "앞으로도 환율이 더욱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단순히 달러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노리기보다도 보유 중인 원화 가치의 하락을 조금이라도 회피하려고 매달 달러로 환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환율 불안 지속 시 저축은행 예금 기반 잠식"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원화 예금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원화 유출로 인한 외화 쏠림 현상에 더욱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어 원화 엑시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란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저축은행 수신잔액은 올해 4월 98조3940억원에서 지난 9월 105조원까지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가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저축은행 예수금 잔액은 103조5000억원으로 한 달 새 1조5000억원 감소했습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가 없지만, 고금리와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자금조달 비용이 단계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며 "시장 신용 경색과 예금 유출이 맞물리면 유동성 관리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대형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고금리 정기예금 상품이 재등장하고, 지방 중소형사는 조달금리 상승으로 순이자마진이 축소되는 등 긴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단순한 외화 선호 현상으로 볼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김정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은 예금자 구성의 충성도가 낮아 자금 이동 충격이 직접적"이라며 "환율 불안이 장기화되면 외화 예금 확대가 저축은행 예금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도 "환율 변동성은 단순한 외환 이슈가 아니라, 저축은행 체력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원화 엑시트가 길어질수록 유동성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역설했습니다.
예금보험공사는 정상 금융회사의 일시적 자금난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안정계정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융안정계정은 금융사가 구조적 부실에 빠지기 전에,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채무보증과 자본 확충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예보 기금은 부실이 현실화된 금융사에만 투입 가능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상 영업 중인 금융사에도 선제적 지원이 가능해집니다.
예보 관계자는 "최근 환율 변동성과 자금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선제적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며 "금융안정계정은 시장 불안을 완화하고, 유동성 위기 확산을 막는 방화벽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명동 환전소에 각국 통화 시세가 게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