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미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이하 릴리)의 피하주사 제형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가 시장을 선점하는 모양새입니다. 릴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약가 조정과 경구제 개발로 비만 치료 시장 이니셔티브를 노리는 중입니다. 후발주자 격인 한국 기업들은 격차가 더 벌어지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9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릴리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21일을 기점으로 1조18억달러(약 1476조원)를 돌파했습니다. 제약바이오 기업 중 처음으로 시총 1조달러를 넘긴 겁니다.
릴리가 시총 1조달러를 넘길 수 있었던 동력은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입니다. 마운자로는 주 1회 피하주사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과 위 억제 펩타이드(GIP) 이중 작용제입니다. 초기 시장을 석권했던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식욕을 억제하는 GLP-1로 가동하는 반면 마운자로는 두 가지 호르몬을 자극해 더 높은 체중 감소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기전상 차이점은 점유율 변화로 나타났습니다. 마운자로는 위고비보다 늦게 출시됐음에도 지난 7월 기준 미국에서 59%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선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위고비가 출시 직후 수요 급증으로 생산 라인에 문제가 생겼던 점도 마운자로 흥행에 한몫했습니다.
마운자로로 비만 치료 시장 정점에 선 릴리는 백악관과 협상을 통해 미국 내 마운자로 약가를 기존 1086달러(약 158만원)에서 346달러(약 50만원)로 줄이는 강수를 뒀습니다. 위고비와의 경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약가를 내린 것은 환자 접근성을 높여 점유율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환자들이 특정 치료 분야에서 처음 접한 브랜드를 고수하는 시장 특성을 고려한 결정입니다.
릴리가 비만 치료 시장 왕좌 쟁취를 위해 내린 또 다른 결단은 제형 변화입니다. 마운자로와 위고비 모두 처방 이후 환자가 자신의 배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입니다. 이와 달리 경구용 제제는 복용 편의성에서 앞서 주사에 거부감을 가졌던 환자들까지 공략할 수 있는 옵션이 됩니다.
일라이 릴리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 (사진=뉴시스)
릴리가 개발 중인 먹는 비만 치료제는 '오포글리프론'입니다. 릴리는 성인 비만환자 또는 2형 당뇨병을 동반한 과체중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 3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마운자로 약가 인하와 제형 변화로 비만 치료 시장 장악을 추진하는 릴리와 비교하면 국내 기업들의 개발 속도는 느린 편입니다.
한미약품이 '국민 비만약'으로 키우는 신약은 '에페글레나타이드'입니다.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성인 비만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핵심 치료 기간 톱라인에선 최대 30%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습니다. 한미약품은 이 결과 등을 토대로 연내 허가를 신청할 방침입니다.
허가 심사는 빠르게 이뤄질 전망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GIFT 대상으로 지정되면 일반 심사 기간 대비 약 25% 단축된 일정이 적용됩니다.
오포글리프론과의 경쟁 구도를 예상한다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에페글레나타이드가 마운자로나 위고비와 같은 피하주사 제형이기 때문입니다.
종근당과 셀트리온은 경구용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군에 속합니다. 종근당은 먹는 비만 신약 'CKD-514'로 비임상을 진행했고, 오포글리프론 대비 적은 용량으로도 유의한 체중 감소 효과와 동일 용량 대비 우수한 혈당 강하 효과를 보였습니다. 셀트리온은 기존 비만 치료제들과 달리 네 가지 타깃을 동시에 조절하는 4중 타깃 기반 신약 'CT-G32'를 승부수로 꺼내들었습니다. 서정진 회장은 비반응률이 5% 이하로 줄고 체중 감소율이 25%까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두 회사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강점은 명확합니다. 종근당 신약의 경우 오포글리프론 대비 적은 용량에서도 개발 가능성을 찾았고, 셀트리온은 타깃을 늘려 개인 간 치료 효과 편차를 줄일 여지를 남겼습니다. 다만, 두 곳 모두 동물 모델까지만 완료해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시장을 선점한 약물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한국 기업의 비만 치료제 개발이 속도전에선 뒤처졌지만 전망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장기지속형 제형, 치료 지속률 개선 등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개발된 신약이 없긴 하지만 비만 치료제의 근간이 되는 펩타이드 기술력은 우수하다"며 "장기지속형 제형 등을 통해 치료 지속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신약이 나온다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