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윤석열정부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무려 공공기관 60곳에 알박기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1대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도 공공기관 인사가 이뤄졌는데요.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해당 인사들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파면 이후에도 인사권 행사가 이어지면서 제도적 통제 장치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대통령실 '인사·참모' 출신 등 다수 포함
16일 <뉴스토마토>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의 임원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정부에서 새로 공공기관장이 임명된 기관은 총 60곳입니다. 총 344곳 공공기관(본부기관 331곳·부설기관 13곳) 중 17%에 달합니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뤄진 이후부터 지난 4월4일 탄핵 직전까지 새로 인사가 이뤄진 공공기관은 35곳입니다. 당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는데요. 윤석열씨의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서둘러 임명에 나선 것으로 분석됩니다.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중 일부 인사는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로, 대통령실 참모·국민의힘 의원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중 최춘식 한국석유관리원장은 지난 1월16일 임명됐습니다. 그는 21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민의힘 출신 인사입니다. 임상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지난 1월31일 임명돼 대통령실 첫 국정과제비서관과 국무조정실 기획총괄정책관을 지냈습니다. 창업진흥원장엔 유종필 원장이 지난 2월28일에 임명됐습니다. 유 원장은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고문 역할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통상 정권 말기 공공기관장 교체는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정치권에선 이번처럼 탄핵 정국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알박기가 단행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공기관이 정권 교체기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됩니다.
윤씨 파면 이후에도 윤석열정부는 22곳의 공공기관장을 선임했습니다. 임승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윤씨 파면 당일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된 바 있습니다. 김영진 대한법률구조공단장은 지난 4월18일에 발탁됐습니다. 김영진 단장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고려대 법학과 동문인데요. 박 전 장관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직후, 자신의 동문인 김 단장을 공공기관장에 임명한 겁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6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선 8일 남기고 발탁…관련 법 '야당 반대'로 계류 중
특히 윤석열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선은 21대 대선 직전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이주호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체제 때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정정훈 당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대선을 불과 8일 남긴 시점인 지난 5월26일엔 김병국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사업전략본부장이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장에 발탁됐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알박기 인사'를 단행했다는 의심 가는 대목입니다.
공공기관의 알박기 논란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어지는 병폐 중 하나입니다. 특히 이번 사례는 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상황과 맞물려 비판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대부분 3년으로 보장돼 있는데요. 정치권에선 민주당 주도로 임기에 맞춰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공운법)입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해철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공공기관장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대통령 임기 종료 3개월 뒤에 공공기관장 임기도 함께 종료되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이른바 '알박기 인사' 논란을 해소하는 게 골자입니다. 새 정부 출범 후 경영 목표를 재설정하고, 이에 따라 임원의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8~9월 사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심사가 진행됐지만 해임 대상 범위와 시행 시점 등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있어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여야는 법안이 통과됐을 경우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를 두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공공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민주당은 책임 정치를 위해 국정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해당 법안의 개정 논의 핵심은 알박기 인사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인사 시기와 절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정치권도 관련 법안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요. 다만 헌법상 소급 금지의 원칙이 규정돼 있어 실제 적용되기까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