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정부가 벤처와 스타트업을 대한민국 성장 전략의 중심에 두는 종합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인공지능(AI)와 딥테크를 중심으로 벤처 생태계를 재편하고, 대기업 중심의 추격형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벤처·스타트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는 대기업 의존과 수도권 편중 등 벤처의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 정책 틀을 전면 재설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AI 스타트업 1만개 육성…'K-빅테크 성장 트랙' 추진
중소벤처기업부는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AI 스타트업 1만개와 유니콘·데카콘 기업 50개를 육성하고, 연 40조원 규모의 벤처투자 시장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유니콘은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데카콘은 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을 뜻합니다.
이 같은 목표를 뒷받침할 핵심 과제 중 하나로는 'K-빅테크 성장 트랙' 구축이 제시됐습니다. 정부는 창업 활성화에 머물던 기존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창업 이후 스케일업과 글로벌 진출까지 이어지는 성장 경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확보 예정인 약 5만장의 인공지능 연산용 반도체(GPU)를 단계적으로 AI 스타트업에 배분하고, AI·딥테크 중심으로 창업 지원 체계를 재편할 계획입니다.
유니콘·데카콘 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 프로그램도 가동됩니다. 정부는 '차세대 유니콘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당 최대 1000억원 규모의 단계별 투자와 보증을 제공하고, 2030년까지 총 13조5000억원을 투입해 성장 단계별 자금 지원과 후속 투자를 연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벤처 성과가 실제 시장으로 연결되도록 기업 간 거래(B2B)·정부 대상 거래(B2G) 진출 확대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대기업과 벤처 간 오픈이노베이션을 단계별 성과 중심 구조로 재설계해 기술 검증 이후 실제 구매와 사업 확대로 이어지도록 할 예정입니다. 공공조달 분야에서는 내년부터 '창업·혁신제품 공공구매' 제도를 벤처기업까지 확대 개편해 중·후기 벤처기업의 B2G 시장 진출을 촉진합니다.
글로벌 진출부터 지역·금융까지…벤처 생태계 전방위 확장
K-벤처의 글로벌 진출 지원도 구체화됩니다. 정부는 실리콘밸리와 도쿄, 싱가포르 등 주요 거점에 스타트업·벤처 캠퍼스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서울에는 글로벌 창업허브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해외 투자 유치와 현지 진출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해외 한인 창업가와의 네트워크 및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협업 프로그램 'AroundX'도 강화합니다.
지역 벤처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5극 3특' 체계를 중심으로 10대 창업도시를 조성하고, 3조5000억원 규모의 지역성장펀드를 마련합니다. 정부는 지역별 산업 특성과 연계한 벤처 클러스터를 조성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침입니다.
이와 함께 재도전 응원본부를 중심으로 실패 경험을 자산으로 인정하는 재창업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재도전 펀드 조성과 보증 지원을 확대해 벤처인의 재도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소셜벤처법 제정을 검토하고, 임팩트 펀드를 조성해 매년 1500억원 이상의 보증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회수·재투자 선순환 구축…정부·업계 "벤처 성장 생태계 전환점"
제도와 금융 분야에서도 개편이 추진됩니다. 정부는 벤처기업법 개정을 통해 벤처기업 인정 범위를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고, 스톡옵션 제도를 개선해 핵심 기술 인재의 벤처 유입을 촉진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모태펀드 개편으로 연기금과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참여를 확대하고, 은행의 정책펀드 출자 위험가중치(RW) 가이드라인 마련과 증권사의 모험자본 의무 공급을 통해 민간자본 유입을 늘릴 방침입니다.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활성화와 대·중견기업의 전략적 투자도 병행합니다.
이와 함께 투자 이후 회수와 재투자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구축에도 나섭니다. 정부는 중소벤처기업 인수합병(M&A)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보증을 확대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한편, 출자자(LP) 지분 유동화와 컨티뉴에이션 펀드 등 기존 벤처투자 지분을 사고파는 회수용 펀드(세컨더리펀드)를 확대 조성해 중간 회수시장을 키우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벤처투자 자금이 회수 이후 다시 재투자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벤처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노용석 중기부 제1차관은 이번 대책과 관련해 "개별 분야나 단편적 과제를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기술·지역·인재·자본 등 네 가지 관점에서 국가 성장 전략의 중심을 벤처로 재편한 첫 종합 대책"이라며 "K-벤처의 도전과 혁신을 국가 성장 전략의 중심에 세우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발표에 대해 "AI·딥테크를 중심으로 한 기술 주도 성장 기조 아래, 창업 이후 스케일업과 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제시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며 "모험자본을 통한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어 벤처기업이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