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삼화페인트(000390) 김장연 회장이 돌연 사망했습니다. 오랜 기간 2대 주주 측과 갈등 관계에 있었던 탓에 경영권 싸움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몰리며 주가가 급등했는데요. 장녀 김현정 부사장이 대표직을 물려받을 경우 가업 승계 공제 혜택을 받아 상속세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매출액 기준을 벗어나 불가능합니다. 상속세 납부 방법 등에 따라 지분 변화가 생길 경우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배당 증액도 예상됩니다.
고 김장연 삼화페인트 회장. (사진=연합뉴스)
18일 삼화페인트는 지난 16일 김장연 회장의 사망 소식을 알렸습니다. 하루 전 주식 게시판에 부고 사실이 알려졌으나 회사의 공식 발표는 이틀 늦었습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집니다.
삼화페인트는 1946년 고 김복규, 고 윤희중 회장이 공동 창업한 중견기업으로 국내 도료업계 3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김장연 회장은 1993년 부친 타계 후 경영권을 물려받아 지난 2021년 3월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다양한 기능성 페인트를 개발하는 등 기술력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4년 전 경영에서 물러난 뒤 올해 6월 딸인 김현정 부사장에게 지분 3%에 해당하는 81만주를 증여하는 등 승계 작업을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1957년생으로 아직 정정할 나이에 급성패혈증으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안팎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입니다.
BW·자사주 논란 돌파하며 경영권 지켰는데
뒤늦게 전해진 김 회장의 사망 소식에 이날 증시에선 삼화페인트 주가가 장초반 상한가로 직행했습니다. 그 배경엔 대주주 간의 지분 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예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삼화페인트의 최대주주는 김장연 회장으로 발행주식 2720만주 중 22.76%인 619만주를 보유 중입니다. 이어 김 회장의 누나 김귀연씨가 40만주(1.5%), 김현정 부사장이 증여받은 주식을 포함해 82만주(3.04%)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 대표들 지분까지 더할 경우 27.39%입니다.
또 다른 대주주로는 공동창업주인 윤희중 회장 일가의 지분인데요. 여기도 2세들이 물려받아 윤석재, 윤석천씨 등이 20.10%를 보유 중입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장연 회장이 대표를 맡은 것은 1993년부터지만 사실은 선대 회장 타계 후 윤희중 회장과 함께 회사를 경영했고 2003년부터는 윤석영 부사장과 공동 경영했습니다. 오랜 기간 김 회장 측 지분이 우위였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3년 4월 삼화페인트가 20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 뒤 BW에서 분리된 신주인수권(워런트) 절반을 개당 173원에 사들이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얻은 주식이 무려 201만주, 지분율로 9.02%나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망한 윤석영 부사장 부인이 BW 발행 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김 회장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두 집안 사이엔 금이 갔으나 실질적으로 지분 차이가 벌어진 후론 올해까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11월 8.78% 규모의 자사주 전량을 처분하면서 경영권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자사주 238만주 중 138만주는 일본 추코쿠마린페인트에 매각, 추코쿠마린 지분율이 9.19%로 대폭 늘어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상황입니다. 나머지 100만주는 이를 교환 대상으로 지정한 교환사채(EB)를 발행해, 사모펀드들에게 넘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회장이 사망하면서 그의 지분 22.76%에 변화가 생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대로 물려받는다면 엄청난 규모의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물납할 경우 지분 절반이 날아가 충분히 확보했다고 생각한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가업상속공제? 매출 기준 살짝 초과
세금 때문에 당장 상속받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엔 민법 제1053조 등에 따라 법원이 지정하는 상속재산관리인이 상속재산을 관리하게 되는데요. 여기엔 보유지분의 의결권이 포함됩니다. 만약 상속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경영권 다툼이 벌어질 경우 상속관리인이 의결권을 행사해 어느 한쪽 편을 들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만약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다면 실제 상속세는 많지 않아 지분에는 영향이 없을 겁니다. 가업상속공제는 중소·중견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하는 경우 상속세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제도입니다. 피상속인 포함 최대주주 지분이 40%(상장법인 20%) 이상, 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김 회장과 김 부사장 모두 해당됩니다.
공제 금액은 피상속인 경영 기간에 따라 △10년 이상은 300억원 △20년 이상 400억원 △30년 이상 600억원입니다. 김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18년간 대표이사로 재직했습니다. 삼화페인트의 17일 종가 6100원 기준 22.76% 지분 총액은 약 378억원, 300억원을 공제받는다면 상속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산과 매출 기준입니다.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경우 자산총액이 5000억원 미만이어야 하고, 중견기업은 상속 직전 3개년 평균 매출이 5000억원 미만이어야 합니다. 삼화페인트는 2022~2024년 각각 5524억원, 5590억원, 5556억원의 매출액(별도)을 기록해 기준을 살짝 초과했습니다. 기준 적용은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올해 매출이 급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배당 동원해도 부족 결국 지분 싸움으로?
김 부사장은 올해 6월 3% 지분을 증여받았는데요. 증여 후 10년 내 사망한 경우여서 이 주식도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해 증여세가 아니라 상속세로 내야 합니다. 다만 증여 주식의 상속 가액은 증여 당시의 주가로 산출합니다. 지난 6월2일자로 81만1000주를 증여받을 당시 기준가는 6010원(총 49억원)으로 지금보다 낮았습니다.
이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상속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10년 분할 납부(연부연납)한다고 해도 부담이 상당할 전망입니다.
김 부사장은 동생인 김정석씨와 함께 삼화페인트를 도매로 판매하는 업체 이노에프앤씨의 상당 지분을 보유 중입니다. 내부거래로 지원받는, 이른바 사주 자녀에게 이익 빼돌리기로 의심받는 회사인데요. 이 회사를 통해 상속세 재원 일부를 충당할 수 있으나 자금이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삼화페인트가 배당을 대폭 키울 것이란 예측이 많습니다. 주주들은 한발 더 나아가 지분 구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따지고 있습니다. 세금 때문에 보유지분 일부를 매각할 경우 잠재된 경영권 분쟁이 촉발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기름에 불이 붙은 이상 상속세 재원 마련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기 전까지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