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이수정 기자]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기업 신뢰도가 바닥을 찍고 있는 쿠팡이 주가 급락으로 시가총액이 13조원가량이 증발했습니다. 여기에 뿔난 주주들의 집단소송과 소비자들의 쿠팡 탈퇴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사면초가에 직면했습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은 쿠팡 본사를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고 주주들 또한 허위, 늑장 공시를 문제 삼아 집단소송에 나섰습니다. 20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에 따르면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의 주주들이 쿠팡 법인과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 거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쿠팡Inc 주주들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쿠팡이 허위 공표를 하고, 사고 사실을 경영진이 인지하고도 공시를 제때 하지 않아 주주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경영진이 중요한 정보를 누락한 결과 투자 리스크를 알지 못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허위 진술 공표는 연방 증권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을 인지한 뒤에도 공시 규정을 어기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제때 내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 4영업일 이내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죠.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Inc 시총은 13조원 증발했습니다. 정보 유출 사고 사실 발표 직전일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28.16달러였던 쿠팡 주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23.20달러로 17.6% 급락한 것인데요. 쿠팡 발행 주식 수가 18억3000만주임을 고려하면 시총 하락분은 종가 기준 91억달러, 한화로는 13조원이 날아간 것으로 계산됩니다. 이는 쿠팡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인 12조8455억원을 웃도는 수치입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6023억원과 비교해도 이번에 증발한 시총 규모는 21배 수준입니다. 미국 주주들이 집단소송으로 쿠팡 본사와 전면전으로 맞붙는다면 앞으로 주가는 더 바닥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13조 시총 증발에도 핵심 임원들 '주식 매도'
특히 쿠팡 임원들이 정보 유출 사고 발표 전에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한 사실이 드러나 쿠팡 미국 주주들의 소송 확대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프라남 콜라리 쿠팡Inc 전 부사장은 지난달 3일, 5일, 17일에 걸쳐 총 5만604주(약 22억원)를 매도했습니다. 이번 소송 피고 중 한 명인 거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같은 달 10일과 12일에 15만700주(약 65억원)를 팔아치웠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가장 우려했던 미국 주주들까지 들고 일어나면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유야무야 넘어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쿠팡은 이제 막 이커머스 공룡으로 성장했지만 역대급 정보보안 사고와 안일한 대응으로 한 번에 모든 걸 다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영업정지까지 검토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쿠팡 측의 대응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잇따른 노동자 산업재해와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도 무책임 경영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쿠팡에 정부와 정치권, 소비자들도 나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로켓배송을 앞세워 문어발식 확장으로 사세를 키워온 쿠팡은 가입자 대다수가 쇼핑, 배달, 미디어, 금융 콘텐츠가 하나로 연계된 서비스가 일상생활에 깊숙이 고착화돼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연 매출 90% 이상을 국내에서 올리고 있는 쿠팡 경영진들은 한국 소비자들은 어차피 쿠팡을 안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무책임 경영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데요.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김 의장을 비롯한 쿠팡 경영진들의 책임 회피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쿠팡 회원을 탈퇴하는 이른바 탈팡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두 달 만에 일일 사용자 수 '최저치'
쿠팡의 일간 이용자 수가 사태 이후 처음으로 1500만명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데이터분석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쿠팡의 이용자 수는 1488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지난달 29일 이후 처음으로 1500만명대가 무너진 것이죠. 이는 추석 연휴가 있었던 지난 10월 6일 이후 두 달여 만에 최저치로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과 비교하면 약 5.2%가 줄었습니다.
쿠팡의 이용자 수는 사태 초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접한 이용자들이 확인차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서 1700만명대까지 올랐지만, 이후 1500만명대로 하락했고 최근에는 1400만명대로 떨어진 것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경쟁사인 네어버의 이용자 수는 1.7%, G마켓은 2.4%가 올라 비교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치, 문화계에서도 탈팡 인증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최민희 민주당 의원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문화·예술계에서는 배우 문성근, 김의성씨와 작곡가 윤일상씨 등이 탈팡 행렬에 앞장섰습니다.
쿠팡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쿠팡은 최근 물류센터 계약직 및 일용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연말 성수기임에도 자발적 무급휴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자발적 무급휴가는 통상 명절이나 할인행사 종료 후처럼 물류량이 줄어드는 시기에 주로 시행되던 제도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주문이 늘어나는 시기에 무급휴가를 실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죠.
현재 쿠팡 물류센터 9곳이 계약직을 상대로 무급휴가에 돌입했고 사무직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물류량이 감소하면서 자발적 무급휴가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쿠팡 소비자 이탈 현상은 지난 17일 과방위 청문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쿠팡의 무책임 경영과 경영진의 책임 회피 행태를 지켜본 소비자들이 반발 심리가 작용한 영향"이라면서 "소비자 불매운동이 지금은 시작 단계지만 쿠팡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신뢰 회복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국내 소비자들의 탈팡 추세는 장기화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