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가 30일 오후 서울경찰청 쿠팡 수사 종합 태스크포스(TF)에서 진행되는 소환조사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후 수사기관을 통하지 않은 '셀프 조사'로 사건 규모를 축소해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받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 대표가 30일 경찰에 소환돼 조사받았습니다.
이날 서울경찰청 쿠팡 수사 종합 태스크포스(TF)는 오후 2시쯤 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로저스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로저스 대표는 경찰의 두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다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 14일 세 번째 출석 요구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소환에 응했는데요.
로저스 대표는 포토라인 앞에서 "쿠팡은 지금까지 정부에서 하고 있는 모든 수사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며 "오늘 경찰 수사에서도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정보 유출 3000건에 불과하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증거인멸 혐의를 인정하는지' '국정원 지시를 받았다는 기존 발언이 위증이었는지' '관세와 관련해 미국에 로비한 사실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조사실로 향했습니다.
경찰은 쿠팡의 셀프 조사에 의해 제출된 디지털 기기에 대한 분석 작업을 끝내고 로저스 대표 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추궁해 진상을 규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은 3370만명에 달하는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직접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노트북을 경찰과 협의 없이 분석한 뒤 지난달 25일 "실제 저장된 정보는 3000건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기습 발표했죠. 쿠팡은 자체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인 전직 중국인 직원에게 자백을 받았고 이는 국가정보원의 요청과 지시하에 이뤄진 절차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연석청문회에 출석한 로저스 대표는 '국정원과 소통했느냐'는 황정아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국정원에서 피의자와 연락하기를 요청했고, 저희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며 "한국 법에 따라서 사실 협조 요청은 구속력이 있고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이해했다"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의 한국 정부 지시 발언에 국정원은 쿠팡 측에 어떠한 지시를 한 바 없다며 청문회를 주도하는 국회 과방위에 로저스 대표에 대한 위증죄 고발을 요청했습니다.
또 쿠팡은 피의자가 중국 하천에 버린 노트북 증거물도 직접 회수한 뒤 포렌식해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이를 두고 쿠팡이 자체 조사에서 증거물을 의도적으로 훼손해 의혹을 축소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그 밖에도 정부가 유출 사태 이후 쿠팡에 자료 보전을 요구했는데도, 5개월치 접속 로그 데이터가 사라졌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셀프조사 과정과 진위를 두고 쿠팡과 정부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경찰은 이번 소환조사에서 쿠팡이 자체 조사를 진행하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피의자인 전직 직원을 접촉하고 핵심 증거물인 노트북을 확보한 행위가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는지, 증거가 훼손되거나 인멸됐을 가능성은 없는지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로저스 대표는 셀프조사 관련 혐의 외에도 2020년에 숨진 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산재 책임을 축소·회피하는 보고를 지시했다는 혐의로 산업재해 은폐 의혹으로도 고발당한 상태입니다.
로저스 대표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미국 하버드대 동문이며 쿠팡의 2인자로 꼽힙니다. 이번 조사 이후에도 경찰은 2차 소환조사를 추진할 수도 있지만 로저스 대표가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경찰은 외국인에 대한 출국 정지를 신청했지만, 검찰 단계에서 반려됐죠.
한편 로저스 대표의 경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쿠팡 측은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