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협상 '빈손'…관세 '첩첩산중'

김정관, 결론 못 내린 채 귀국…연방대법원 판결 앞두고 압박 수위↑
관세 합법성 흔들리자 '동맹 때리기'…한국경제 상시 리스크로 '고착'

입력 : 2026-02-01 오후 6:22:12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이틀 연속 워싱턴 담판에도 결론 없이 '빈손' 귀국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적법성 판단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트럼프발 관세가 협상으로 관리할 수 없는 상시 리스크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오해는 풀었다"지만…관세 인상 절차는 이미 '시작'
 
1일 산업부에 따르면, 김정관 장관은 지난달 29~3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상무부 청사에서 카운터파트인 러트닉 상무장관과 관세 후속 협의에 나섰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6일 한국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을 명분으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밝히자, 정부는 김 장관을 미국으로 급파했습니다. 
 
김 장관은 귀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은 한국의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점에 대해 굉장한 아쉬움을 나타냈다"며 "한국 정부가 관세 협정을 이행하지 않거나 지연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습니다. 
 
대미투자특별법이 지난해 11월 제출됐고, 12월에는 예산안 협의, 올해 1월엔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거치면서 법안을 논의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김 장관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나 '쿠팡 문제'는 협상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아니었고,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측의 관세 인상 절차는 이미 시작됐고, 관보 게재도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워싱턴에 도착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김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아 오는 5일까지 현지에 머물며 한국의 정치 상황과 입법 절차를 설명하고, 이번 관세 인상의 부당함을 미국 측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민주당은 대미투자특별법을 2월 말∼3월 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특별법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상정된 뒤 소위에 회부되면, 재경위 차원의 특별법 논의가 가능해진다"며 "특별법이 처리되면 한·미 간 협상도 정리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31일 인천공항 터미널2을 통해 귀국 후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별법 지연 때문?…트럼프 속내는 '방어 위한 선공'
 
하지만 미국 측 관세 압박은 단순한 입법 지연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한·미 간 양해각서(MOU)에는 "미국과 한국은 본 양해각서에서 정한 사항을 이행하기 전에, 필수적인 국내법 제정 절차를 이행할 필요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MOU가 규정한 관세 인하 요건인 법안 '제출'은 이미 충족됐고, 이를 전제로 미국 정부도 관세 인하를 실행한 상태입니다. 국회의 '통과 지연'을 이유로 관세를 다시 인상하는 것은 양국이 합의한 이행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관세 인상은 관세를 올리겠다고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상대를 끌어낸 뒤, 미국이 원하는 의제를 관철하는 트럼프식 협상 방식이 다시 작동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정부는 쿠팡이나 온플법이 이번 사태와 무관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 측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를 완전히 분리해 보기도 어렵습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조치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권한이 제약될 수 있는 국면을 앞두고 오히려 자신의 관세 부과 권한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방어를 위한 선제공격에 나선 셈입니다. 
 
유럽의회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요구와 관세 위협에 반발해, 유럽연합(EU)과 미국 간 관세 합의 승인 절차를 보류한 점도 같은 맥락입니다. 관세 압박 전략의 실효성이 흔들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동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협상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강경 노선을 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은 채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다"며 한국을 겨냥한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주류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이 관세로 인한 주가 하락과 인플레이션, 경기침체를 전망했던 점을 언급한 뒤 "9개월이 지난 지금, 그 모든 예측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관세를 활용한 해외 투자 유치 성과로 '한국' 사례를 가장 먼저 소개했습니다.
 
결국 남는 압박 대상은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협상 중"이라는 프레임을 국내 정치 성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협상 자체는 결론 없이 장기화할 공산이 큽니다.
 
미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품목관세를 중심으로 압박 수위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개별 품목을 겨냥한 관세 카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구조입니다. 이 경우 관세 압박은 일회성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상시로 흔드는 불확실성 요인으로 고착될 수 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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